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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남 철수 작전 ==
현봉학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지인 [[대구]]에서 지인의 소개로 한국 해병대의 문관으로 활동하였으며 그 이후 부대의 이동에 따라 [[강원도]] [[고성군 (강원도)|고성]]에 머물다가 알몬드 10군단장을 만나 민사부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흥남 철수 작전]]에 관여했다. 작전 당시인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는 미군과 한국군 10만5천명과 피난민 9만명으로 혼잡한 상태였다. 미국 군함과 비행기가 중공군에 폭격을 하는 동안 군함과 상선 약 200척이 흥남 철수 작전에 동원됐다. 당시 피난민이 함께 승선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현봉학은 자신이 승선하고 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 의 레너드 P. 라루 선장에게 최대한 많은 수의 피난민들을 태워 구출해 달라 간곡하게 요청했고 이에 탄복한 라루 선장은 배에 실려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피난민을 최대한 태우라고 명령했다. 피난민들도 자신의 짐을 버리고 승선해 모두
== 사회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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