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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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 결혼 후에 그가 화가 조합이던 신트 루카스 길드에 등록한 이유도 이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에는 화가를 포함한 예술가·상인·수공인 등은 길드에 등록해야만 영업을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화가뿐만이 아니라 화상(畵商)으로서 그리고 예술 전문가로서의 이름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살기 위해, 생활의 연명을 위해 그랬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일생에는 시련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현존 작품 40점은 거의 대부분 소품들로서 한 두 사람의 가정생활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그 밖에 [[루가 복음서]]에 나오는 [[베타니아의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이야기를 소재로 그린 그림처럼 [[성서]]속의 이야기들을 주제로 한 것도 있고, 불과 2점이지만 [[풍경화]]도 있다. 풍경화 중에 《델프트 풍경》(헤이그 국립미술관 소장)은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옛날 카탈로그에서 언급된 몇몇 작품들은 영원히 소실되어 버린 것 같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한 판 메이헤런|메이헤런]] 사건의 여파로 페르메이르의 새로운 작품이 발견되어도 전문가들은 별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색조(色調)가 아주 뛰어났으며 적 ·청 ·황 등의 정묘한 대비로 그린 실내정경은 마치 개인 날 북구의 새벽 대기(大氣)를 생각나게 한다. 맑고, 부드러운 빛과 색깔의 조화로 조용한 정취와 정밀감(靜密感)이 넘친다. 초기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뚜렷한 대비는 만년이 될수록 완화되었다. 그 밖에 《편지를 읽는 여성》([[드레스덴 미술관]] 소장) 《우유를 따르는 하녀》([[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터번을 쓴 소녀》([[헤이그 국립미술관]] 소장)·《레이스를 뜨는 소녀》([[루브르 미술관]] 소장)·《화가의 아틀리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