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데 안티파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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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경 안티파스의 첫번째 부인의 아버지인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4세가 침입하였고 이에 로마에 구원을 요청하자 황제는 비텔리우스를 파견했으나 일부러 느리게 이동했다고 한다. [[칼리굴라]]가 로마의 황제가 되자 안티파스의 아내 헤로디아는 오빠 [[헤로데 아그리파 1세]]의 성공을 시기하여 제거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아그리파 1세의 역공을 받아 칼리굴라 황제는 안티파스와 헤로디아를 [[갈리아]]로 추방했고 두사람은 그곳에서 죽었다.
 
==성경과성서와 헤로데 안티파스==
[[신약성경신약성서]]에 따르면 안티파스의 아내 헤로디아가[[헤로디아]]가 그를 부추겨 [[세례자 요한]]을 잡아 가두게 했으며 자신의 딸을 시켜 안티파스에세 세례자 요한의 목을 가져오도록 하게 했다고 한다. 이 딸의 이름은 성경에는[[성서]]에는 나오지 않으나 전통적으로 [[살로메]]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수많은 예술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안티파스는 [[누가복음루가 복음서]]에 다시 등장하는데 예수의[[예수]]의 수난과 재판에 관여한 것으로 되어있다. 예수가 붙잡혀 수난을 받을 당시 안티파스는 [[유월절과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다. [[폰티우스 필라투스]]는 체포되어 자기 앞에 끌려온 예수가 갈릴리[[갈릴래아]] 사람이라는 것을 알자 그를 관할인 안티파스에게 보내어 재판을 받게 했다. 안티파스는 예수가 기적을 일으킨다는 소식을 전부터 듣고 있어서 예수를 만나자 기적을 일으켜보라고 요구했다. 예수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아무일도아무 일도 하지 않자 안티파스는 그를 조롱하며 다시 필라투스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고 누가복음에만루가 복음서에만 거론되고 있다.
 
[[외경]]인 [[베드로의 복음서]]에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명령을 내린 것은 필라투스가 아닌 헤로데라고 말한다. 베드로복음에는 필라투스와는 달리 '손을 씻기'를 거부한 것은 분명히 헤로데 안티파스와 "유대인들" 이라고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