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전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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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시조 = 전유 (全侑)
|집성촌 =
|인물 = [[전명룡전희철]], [[전익희전식]], [[전희철전명룡]], [[전식전익희]], [[전극항]], [[전정구]], [[전재만]]
|년도 = 2000
|인구 = 43,92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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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
* [[전희철]](全希哲)은 단종 때 벼슬이 상장군에 올랐으나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 임종 때 아들에게 1 년에 한번씩 영월에 찾아가 단종능에 참배하도록 당부했다.
* [[전식]](全湜)은 1589년 진사가 되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왜적을 죽이고, 강원도 찰방이 되었다. 1603년 문과에 급제, 병조참지를 거쳐 이조참의, 대사간에 올랐으며, 1642년 지중추부사, 동지경연사, 동지춘추관사에 이르렀다.
* [[전명룡]](全命龍)은 조선 인조 때의 인물로서 1627년 문과에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대사헌에 올랐다. 그는 도학과 문장이 뛰어나 후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옥천의 봉양서원, 영주의 방산사(方山祠)에 제향되고 있다.
 
* [[전익희]](全益禧)는 1624년 문과에 급제, 정언(正言)을 거쳐 1641년 지평(持平)을 역임, 선산부사로서 선정을 베풀었다.
 
* [[전희철]](全希哲)은 단종 때 벼슬이 상장군에 올랐으나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 임종 때 아들에게 1 년에 한번씩 영월에 찾아가 단종능에 참배하도록 당부했다.
 
* [[전식]](全湜)은 1589년 진사가 되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왜적을 죽이고, 강원도 찰방이 되었다. 1603년 문과에 급제, 병조참지를 거쳐 이조참의, 대사간에 올랐으며, 1642년 지중추부사, 동지경연사, 동지춘추관사에 이르렀다.
 
* [[전극항]](全克恒)은 1624년 문과에 급제, 운문관 검열(芸文館 檢閱)을 거쳐 예조정랑에 올랐으며 병자호란 때 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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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과
전대식(全大植)
 
== 인구 ==
*1985년 8,981가구 37,380명
*2000년 13,556가구 43,920명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