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토폴 포위전 (1941년~194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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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의 해군기지인 세바스토폴은 세계에서 강력한 요새 중 하나였다. 크림반도 남서부 끝의 [[석회암]]질 곶에서 깊이 침식한 곳에 있는 세바스토폴은 지상으로 접근하기 되게 힘들었다. 세베르냐 만이 내려다 보이는 고도가 높은 절벽 지대가 정박지를 보호하여 상륙 위협을 막았다. 소련 해군은 항구를 현대화하고 천혜의 방어에 더하여 내륙과 바다로 발사할 수 있는 견고한 해안 방어 시설을 건립했다. 포병은 강한 콘크리트와 장갑차 포탑으로 보호받았다. 항구는 주요한 목표물이었다. 세바스토폴 항구는 추축국이 더 먼 원해로 진출할 수 있게 해 줘 코카서스 항구와 산맥 지역을 해상이나 공중에서 공격이 가능하게 하는 잠재된, 중요한 해군기지·공군기지 역할을 했다.<ref>Dear and Foot 2005, p. 774.</ref> [[소련 공군]]은 1941년 6월 추축국의 소련 침공 이후 크림반도에서 루마니아로 폭격하면서 공군기지로서의 가치가 증명되었다.<ref>Bergstrom 2007, p. 43.</ref>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됐을 때 소련의 공격 목표로 크림반도가 들어가 있진 않았다. 도이칠란트군은 [[붉은 군대]] 대부분을 [[드니프르 강]] 서부에서 붕괴시키면서 진군하는 소탕 작전 도중 무혈입성하리라 예상했했다예상했다. 그러나 6월에 들어서는 소련 공군이 크림반도에서 루마니아의 석유 정제 시설을 폭격하면서 석유 11,000톤을 잃게 되었다. 도이칠란트의 아돌프 히틀러 총통은 크림반도를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이라고 말하면서 1941년 7월 23일 아돌프 히틀러 총통의 33번째 지침에서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 같은 중요한 목표를 점령하라고 명령했다.<ref>Forczyk 2008, p. 6.</ref>
 
[[독일 육군 최고 사령부|도이칠란트 육군 최고사령부]]는 크림반도가 루마니아 석유 시설 공격을 방어하려는 군사상 요처이고 최대한 빨리 점령하라고 명령했다. 아돌프 히틀러 통총은 남진하라는 자신의 명령에 대한 장애를 못 견디고 8월 12일에 크림반도를 즉시 점령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키예프]]에서 [[키예프 전투 (1941년)|거대한 포위전]]이 일어나는 한 달여간, 9월 17일 [[11 군 (독일 국방군)|도이칠란트 제11군]]의 지휘관이 된 [[상급대장]]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지휘를 맡은 지 일주일 후 크림반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치열한 전투 이후 에리히 폰 만슈타인은 소련의 여러 반격을 격퇴하고 붕괴시켰다. 11월 1일에는 크림반도의 주도인 [[심페로폴]]을 점령했고 11월 16일은 크림반도 전체를 일소했다. 케르치가 11월 16일 함락된 후 유일하게 남은 지역은 세바스토폴이었다.<ref>Forczyk 2008, p. 8–9.</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