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테베 작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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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확장 필요|en|Operation Entebbe}}
{{항공사고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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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명 = 에어프랑스 139편
| 그림 =
| 그림 설명 =
| 발생일시 = [[1976년]] [[6월 27일]]
| 발생유형 =
| 발생원인 = [[항공기 납치]]
| 발생장소 = {{국기나라|우간다}} [[엔테베]] [[엔테베 국제공항]]
<!-- 비행내역 -->
| 기종 = [[에어버스 A300|에어버스 A300-B4-203]]
| 소속 = [[에어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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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지 = [[벤구리온 국제공항]]
| 경유지 = [[엘리니키온 공항]]
| 목적지 = [[파리 샤를 드 골 공항]]
<!-- 피해내역 -->
| 탑승승객 = 248명
| 승무원 = 12명
| 사망자 =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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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테베 작전'''(Operation Entebbe)은 [[1976년]]에 [[우간다]] [[엔테베]]에 있는 [[엔테베 국제공항]]에서 일어난 [[에어 프랑스]] 항공기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항공기 납치]] 및 [[이스라엘]] 특공대가 납치된 인질을 구출한 사건을 말한다.
==개요==
엔테베 특공작전은 1976년 7월 3일부터 4일까지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된 항공기의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실시한 기습 작전이다.
 
== 납치 ==
[[1976년]] [[6월 27일]]에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소속 테러리스트 2명과 [[독일 적군파]] 소속 테러리스트 2명이 [[그리스]] [[아테네]] [[엘리니키온 공항]]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프랑스]] [[파리 (도시)|파리]] [[파리 샤를 드 골 공항]]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139편을 납치하여 우간다에 소재한 엔테베 국제공항에 착륙시켰다.
 
== 사건발생인질 구출 작전 ==
[[1976년]] [[7월 4일]]에 [[이스라엘군]] 특공대가 인질을 구조하기 위해 인질들이 피랍된 엔테베로 침투하여 일명 '선더볼트'라는 구조 작전이 벌어졌다. 이스라엘군은 인질범 7명 전원과 우간다군 30명을 사살하였고, 납치된 인질 103명 전원을 구조하였다. 구조 과정에서 이스라엘군 1명과 인질 3명이 사망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214&aid=0000167273 아덴만 여명, 엔테베 작전과 '닮은꼴']</ref><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67&bbs_id=BBSMSTR_000000000138&ntt_writ_date=20140703 500자로 읽는 역사속 오늘 - 이스라엘 엔테베 기습작전 (1976)]</ref>
1976 년 6월 27일 승객 및 승무원 269명이 탑승한 파리발 텔 아비브행 에어 프랑스(Air France) 항공사의 민간 여객기가 중간 기착지인 그리스의 아테네를 이륙한 직후 7명의 중무장한 PFLP 소속의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공중납치 되었다.
납치된 항공기는 리비아의 벤가지 공항에 급유를 위해 착륙했고, 그 곳에서 출혈이 심한 영국인 여자 패트리시아 수잔이 석방되었다. 벤가지 공항을 이륙한 납치범들은 수단에 착륙하고자 했으나, 수단 정부의 착륙거부로 인해 기수를 돌려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착륙했다.
268명 인질들의 안전한 석방을 담보로 납치범들은 로드 공항에서 발생한 항공기 이용객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가담하여 투옥중인 일본적군 테러리스트 고조 오카모토를 포함한 53명의 동료 테러리스트 석방을 요구했다. 납치범들은 그들의 협상대표로 우간다 주재 소말리아 대사를 지정했고, 프랑스 정부대표로 우간다 주재 프랑스 대사를 지정했다. 그러나,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Idi Amin)은 프랑스 대사의 협상 참여를 제지하고 대신 자기가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한다고 발표했다. 납치범들은 요구조건 수락 시한을 7월 1일로 정하고, 52명의 동료 테러리스트들을 엔테베 공항으로 데려올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이 테러리스트의 협박에 굴복할 기미가 전혀 없었으며, 테러리스트와의 협상불가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항공 기 납치사건 발생 3일째인 6월 30일 납치범들은 노인과 어린이를 포함한 47명의 인질을 석방했고, 이들은 케냐로 후송되었다. 한편, 이츠하크 라빈 총리실을 점거하는 등 인질 가족들의 거센 항의가 계속되자 이스라엘 정부는 초기의 강경한 입장에서 벗어나 인질들의 석방을 위해 납치범들과 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납치범들은 그들이 정한 협상시한을 7월 4일로 연장하고 추가적으로 100명의 인질을 석방했다. 한편, 프랑스의 중재로 PLO의장 아라파트는 대표자를 우간다로 파견하여 사건의 조기 종결을 시도했으나, 납치범들의 거부로 무위에 그쳤다. 7월 2일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의 추가적인 요구조건으로 5백만 달러의 현금을 요구했다. 이스라엘의 정보당국은 이스라엘 정부의 반응을 무시하고 유태인 인질들을 무조건 사살하라는 PFLP의 아디 하다드의 명령이 내려진 전화를 도청하고 인질구출작전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 각주 ==
<references/>
==인질 구출==
이스라엘 공군 '''[[C-130]]''' 수송기 4대를 투입 [[이스라엘]]에서 이륙하여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된 항공기가 있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까지 4,000km의 거리를,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방공망을 피해가며 20m가 안 되는 초 저공비행으로 침투한 후 '''[[C-130]]''' 수송기에서 내린 100여명의 특수부대원들이 인질들을 성공적으로 구출하여, 이들과 함께 다시 [[이스라엘]]로 귀환하였다.
 
 
== 바깥 고리 ==
==인질구출(Thunderbolt) 작전==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27807&cid=42158&categoryId=42158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의 엔테베 작전 (네이버)]
이스라엘은 에어 프랑스 항공기가 납치되었다는 정보부 모사드(Mossad)의 보고 직후 라빈 수상을 위원장으로 한 위기관리 대책위원회를 사건발생 당일인 1976년 6월 27일 긴급 소집하고, 계속적으로 정보수집을 지시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테러리스트와의 타협불가’라는 강경정책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건발생 직후부터 특공대에 의한 인질구출작전은 어느 정도 고려되어진 사항이었다. 그러나 구출작전을 감행하는 것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지리적으로 항공기가 납치되어 있는 우간다까지는 이스라엘로 부터 4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 특공대원의 수송을 위해 무착륙 비행을 할 수 없으며, 특공대원 수송항로가 적대국들인 점, 그리고 납치범들은 이디 아민 대통령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들 이었다. 그러나 정보부의 모사드는 납치범, 인질, 공항구조, 우간다 정부군의 배치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고, 이를 바탕으로 특공대는 공군기지에서 작전명 썬더볼트(Thunderbolt)에 의거 인질구출작전 리허설을 반복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위키공용분류|Operation Thunderbolt}}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 건설이 이스라엘 건설회사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공항구조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입수되어 있었고, 미국이 촬영한 엔테베 공항 인공위성 사진도 입수되어 분석이 이루어졌다. 6월 30일 추가적으로 유태인을 제외한 인질들이 석방되었고, 석방된 이들 인질들로부터 엔테베 공항, 테러리스트, 우간다 정부군 배치상황 등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입수함으로써 구출작전의 계획은 용이해졌다.
1976년 7월 2일 시몬 페레스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구르 참모총장에게 인질 구출작전에 대한 세부지침이 하달되었고, 이에 따라 구출작전에 투입되는 특공대는 C-130허큘러스(Hercules)기 4대, 지휘용 및 구호용 보잉 707 2대로 편성키로 하고 엔테베와 이스라엘 간의 비행계획, 공항 습격계획, 인질구출요령 등이 작성되었으며, 우발사태에 대비한 계획도 검토되었다.
중간 급유계획은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케냐의 나이로비로 결정하고 제반조치도 완료했다. 동 구출작전의 지휘관은 공수여단장 덴 솜론(Dan Shomron)이 맡았고, 특공대장은 조나단 나타나휴(Jonathan Netanyahu) 중령이였다.
1976년 7월 3일 오후 구출작전의 내각 결정이 내려지기 20분전 특공대는 이미 우간다로 출발했다.
라빈 수상이 내각을 소집, 공식적으로 허가 여부를 토의하기 시작하였을 때는 네 대의 비행기가 이미 이륙한 뒤였다. 내각이 부결하면 비행기를 귀환시킬 작정이었다.
 
[[분류:에어프랑스의 항공 사고]]
특공대는 이스라엘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저공으로 비행하여 7시간만에 계획대로 22시 45분에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 상공에 도착했다.
[[분류:항공기 납치]]
한편, 보잉 707 1번기는 엔테베 남쪽 빅토리아호 8천미터 상공을 선회하며 특공대의 지원과 본국의 작전본부와 통신망을 유지했고, 2번기는 작전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상자의 치료와 후송을 위해 케냐의 나이로비에 대기하고 있었다.
[[분류:1976년 항공 사고]]
[[분류:중동 분쟁]]
특공대와 작전에 필요한 장비를 탑재한 4대의 [[허큘러스]] 수송기는 엔테베 공항으로 비행하여 관제탑에는 석방할 테러리스트의 수송기라고 속이고 아무런 저항없이 24시경에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했다.
[[분류:우간다에서 일어난 항공 사고]]
이스라엘 군은 엔테베 공항의 모형을 급조, 훈련을 이미 받았다. [[허큘러스]] 수송기 3대가 엔테베 공항에 내려 구출작전을 벌이는 동안 이스라엘 공군사령관과 총참모부의 작전사령관은 1기의 다른 허큘리스에 타고 상공에서 직접지휘하였다. 이스라엘군의 장교들은 늘 앞장 선다.
[[분류:1976년 테러 사건]]
[[분류:1976년 우간다]]
이스라엘 특공대는 엔테베 공항에 착륙하자마자 벤츠를 내렸다. 마치 이디 아민이 외국 출장을 끝내고 돌아오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분류:1976년 프랑스]]
 
[[분류:1976년 이스라엘]]
나타냐후 중령의 지휘로 특공대원들은 이디 아민 대통령의 개인 리무진으로 위장한 벤츠 승용차로 경비병 대기소로 접근하여 경비경을 사살했고, 이 순간 공항 전체가 정전이 되었고 허큘러스 4번기에서 조명탄이 올려져 특공대원들에게 측면지원을 시작했다.
[[분류:1976년 분쟁]]
구 터미널 밖에서는 특공대원들이 입구에 있던 납치범 2명을 사살하고, 건물내로 진입하여 히브리어로 인질들을 향해 "엎드려"라고 소리치고 추가적으로 납치범 2명을 사살했다. 추가적으로 터미널 밖에서 응사하는 2명의 테러리스트 역시 사살했다. 테러리스트들을 사살하고 인질들을 구출할 때까지의 총격전은 불가 1분 45초로 끝났으나, 우간다 군의 응전이 시작되었다.
특공대의 대전차 미사일과 기관총의 응사가 이어졌고 폭파팀은 우간다 공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공항에 있던 11대의 미그기를 파괴했고, 헤큘러스 1대는 이륙하여 지상에 있는 이스라엘군을 엄호하여 인질들의 수송기 탑승을 도왔다.
인질구출 작전에 걸린 시간은 30분이었다. 100명의 이스라엘 특공대 가운데 전투에 투입된 인원은 29명이었다. 이들은 일곱 명의 납치범들, 30명 이상의 우간다 군인들을 사살하였다. 비행장에 있던 11대의 미그 17기를 파괴하고 이륙하였다. 그러나 이작전중 이스라엘군 특공대장 조나단 나타냐후 중령이 아쉽게도 숨졌다.
최초 계획대로 53분만에 모든 작전을 완료하고 인질을 무사히 구출한 특공대는 4대의 [[허큘러스]]기에 분승하여 이스라엘 전투기의 호위속에 텔 아비브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여 열열한 환영을 받았다. 이스라엘 특공대를 태운 [[허큘러스]] 군용기는 8000km를 왕복하였다. 돌아올 때 케냐에 잠시 급유를 위해 기착하였다.
우간다는 유엔 안보리에 항의하였으나 안보리는 이스라엘의 특공작전을 자위권 행사로 인정, 규탄 결의를 채택하지 않았다.
납치된 여객기엔 최초 248명의 승객과 12명의 승무원들이 타고 있었다. 납치범들은 프랑스인 기장을 풀어주었으나 기장은 인질들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면서 다른 승무원들과 함께 남았었으나 구조되었다. 또 석방된 인질을 제외하고 남아있던 105명의 인질 가운데 구출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4명 외 전원이 구출되었다.
이후 사건 종결뒤 치료를 위해 우간다의 병원에 후송되어 있던 영국인 국적의 유태인 도라 블록(Dora Bloch)은 보복조치로 우간다 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화 화==
이 엔테베 인질구출작전은 1976년 미국에서 영화명 '''"엔테베 특공작전 (Victory At Entebbe)"'''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마빈 J. 촘스키 감독이 메카폰을 잡고 커크 더글러스, 버트 랭카스터, 엘리자베스 테일러, 린다 블레이어, 안소니 홉킨스, 리차드 드레이퓨스등 호와 배역들이 출연하였다.
 
===영화 줄거리===
반 이스라엘 테러단에 의해 프랑스 국영 항공기가 납치되어 우간다의 엔테베에 억류된다. 이들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이 프랑스가 이스라엘에 미라제 전투기와 원자로를 판매한 보복으로 프랑스 항공기를 택한 것이었다. 테러범들은 이스라엘에 갇혀있는 53명의 테러범들의 석방을 요구한다.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아민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으려 한다. 고심하던 이스라엘 정부는 '썬더볼트(Thunderbolt)'라는 암호가 붙은 인질 구출 작전을 감행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로 상영된 바 있다.
 
* 1978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최우수 TV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