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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량욱'''(康良煜, {{표준어|'''강양욱'''}}, [[1902년]] [[12월 7일]] ~ [[1983년]] [[1월 9일]])은 [[일제침략기]]의 [[장로교]] [[목사]], 교육자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교육자, 정치인이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서기장, 조선최고인민회의 1기 대의원, 상임위원회 서기장 등을 지내고 [[1972년]] 국가 [[부주석]]이 되었으며 81년 부주석에 재선되었다. [[김일성]]의 외삼종조부이며 칠골 창덕소학교 당시 담임이었고, [[강돈욱]]의 6촌 형제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소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신학교에 다녔고, [[1944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해방 후에는 [[조선민주당]]에 참여하였고, 북조선 정부수립 후 최고인민회의 서기장, 부주석 등을 지냈다.
 
[[칠골교회]]와 [[창덕교회]]에서 활동했고 그의 6촌 형 [[강돈욱]]이 세운 [[창덕학교]]의 교사였다. [[1946년]] [[3월]] [[백의사]]는 강량욱의 집에 폭탄을 던졌으나 그는 출타중이었고, 아들과 며느리, 딸 및 그의 집을 방문한 다른 목사 1명이 사망했다. 본관은 [[신천 강씨|신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