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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윤증의 감정적 다툼은 [[1669년]] [[윤선거]]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윤증은 스승인 송시열에게 아버지 윤선거의 묘갈명을 부탁했는데, 송시열이 윤선거의 병자호란 당시 행적과 [[주자학]]에 대한 선명성을 문제 삼았다. 송시열의 교조적인 태도에 대하여 윤선거는 생전에 《기유의서》를 남겨 비판한 적이 있어, 두 사람 사이의 앙금이 사후 윤증을 통해 다시 촉발된 것이었다. 윤증이 소론에 속하면서 양 파벌의 분화는 촉진되었다.
 
숙종과 [[조선 경종|경종]] 대에 이르러 소론은 경종을, 노론은 [[연잉군]]을 지지하여지지해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 극에 달했다. 경종은 숙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소론이 득세했으나, 후사가 없어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삼으면서 대리청정 논쟁, [[목호룡]]의 역모 사건 등으로 정국은 복잡해졌다. 결국 경종은 일찍 사망하고 연잉군이 영조로 즉위하여 이번에는 노론이 정권을 장악했다. 영조 즉위 초에 소론의 핵심은 제거되었고, 일부는 남인과 연합하여 [[이인좌]]의 난을 일으켰다가 척결되었다.
 
이후 영조와 [[조선 정조|정조]]의 탕평책을 통해 집권당의 일부로 남아 있었다. 소론의 학문적 전통은 [[정제두]], [[이광사]]를 통해 이어져 강화학파를 형성했고, [[이종휘]]와 [[이건창]]을 거쳐 [[정인보]]에까지 승계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