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비쿠스 4세 트란스마리누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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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후반 ===
풀려난 루이는 곧 오토 1세에게 군사를 빌려 [[946년]] [[랭스]]를 되찾았으며 [[949년]]에는 [[레온]] 지역을 다시 손에 넣었다. 948년 오토 1세는 루이 4세와 위그 르 그랑과의 갈등을 중재할 목적으로 인겔하임에서 성직자 회의를 개최하였다. 인겔하임 회의에서는 왕권은 신성불가침으로 선언되고 이를 어긴 위그 르 그랑은 이를 어겼다며 파문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위그 르 그랑]]은 파문에 개의치 않았고 루이 4세의 영지였던 [[수아송]] 지역을 약탈하였으며, [[동프랑크]]가 점유하던 [[로렌]] 지역까지 쳐들어가 약탈하였다. [[오토 1세]]는 루이 4세를 지원하여 서프랑크 왕국의 북동부 지역에서의 루이의 영향력을 키워주었다. 이후 위그와 계속 갈등관계에 있었지만 [[951년]] 동,서 프랑크의 종교회의와 교황에 의해 위그는 파문당했다. 위그는 곧 루이 4세와 다시 휴전 겸 화해를 청했다.
 
[[954년]] [[9월 10일]] [[랭스]] 부근에서 승마 사냥중 [[늑대]] 무리를 보고 도피하던 중 갑자기 낙마하여 죽었고 제위는 아들 로테르에게 돌아갔다. 일설에는 그가 랭스 숲에서 헛것을 보았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