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독관계연방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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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던 1989년 11월 10일 내독부 과장이었던 [[에버하르트 쿠어트]](Eberhard Kuhrt)는 동서독이 전쟁하지 않고 교류, 화해를 거쳐 평화통일을 하게 된 이유는, 결국 서독의 막대한 돈 때문이라고 말한다.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내독관계의 토대는 "현찰을 통한 인권개선"이라고 말했다. 동독 외무부의 고위 관계자는 "동독의 내독관계에 대한 관심은 오직 외화 수급 때문"이라고 말했다.<ref>"베를린장벽 붕괴, 소련 통제력 약화로 가능했다", 연합뉴스, 2016/02/26</ref>
 
1972년부터 1989년까지, 서독 정부는 정치범 석방용 34억 마르크를 포함해 140억 마르크(한화 7조원)를 공식적으로 제공했다.<ref>"베를린장벽 붕괴, 소련 통제력 약화로 가능했다", 연합뉴스, 2016/02/26</ref>
 
그러나 다른 보도에서는, 1970년대 중반 이후 통일까지 서독 정부는 매년 평균 23억 달러(2조 5천억원)를 동독 정부에 제공했다고 한다.<ref>"참 좋은 이야기야! 나는 교류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네", 브레이크뉴스, 2016.01.01</ref>
 
==동독 복지정책==
동독은 사회주의 국가라서 막대한 주민복지를 전부 정부가 무상제공했다. 그러나 가난한 동독 국민들의 세금을 거둬서는 이러한 복지정책을 추진할 수가 없었고, 이 딜레마를 서독의 마르크화가 해결해 주었다. 동독 서기장은 서독에서 받은 막대한 마르크화로 동독 주민들의 사회주의 복지문제를 해결해 민심을 안정시켰다. 미국 달러화가 아니라 서독 마르크화 지폐가 동독 정부에 엄청나게 쌓여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