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바오산 사건 기념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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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상 : 길림성지린성 장춘현창춘현 만보산 삼성보
현재 : 지린성 더후이시 미사쯔진 황자촌 마샤오커우툰
현재 : 길림성 덕혜시 미사자진 황가촌 마소구둔
역사적의의 : 만보산 사건(1931년 7월 2일 중국 지린성 창춘현 삼성보의 만보산지역에서 한중 두나라 농민사이에 일어난 충돌사건)
 
 
내용 :
1931년 7월 2일 장춘시창춘시 교외의 만보산에서 조선족 농민과 중국인 농민 사이에 논에 물을 대기 위한 수로 개척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했다. 이를 "만보산사건"이라 한다. 이 사건은 중국과 일본, 식민지 조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기념비 앞면에는 "장춘시창춘시 중점문물보호단위, 만보산사건 구지, 장춘시창춘시 정부 1985년 12월 공포, 덕혜현더후이현 정부 립"이라고 새겨져 있다.
기단부 토대가 비에 씻겨 내려가 다시 보강할 필요가 있다.
1931년 7월 만보산 사건 당시 문제가 되었던 관개수로(이통하이퉁강)는 많이 앝아져서 잘 알아볼 수 없었다.
현재 조선족 농민들은 거의 떠나고 논농사는 대부분 한족들이 짓고 있다.
기념비는 덕혜시더후이시 당국이나 현지 주민들의 무관심으로 거의 방치되고 있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