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 (1935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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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김상현은 [[1935년]] [[12월 6일]]에 [[전라남도]] [[장성군|장성]]에서 태어났다. [[한영고등학교 (서울)|서울한영고]]를 졸업하고 [[김대중]]이 운영하던 웅변학원에 취직하게 되는데 이런 인연으로 훗날 [[동교동계]] 정치인이 되었다. [[1965년]] 31세에 [[민중당 (1965년)|민중당]] 소속으로 [[김재광]]의 사퇴로 치러진 [[서울 서대문구의 국회의원|서대문구 갑]]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1966년]] [[3월 15일]] 국회 [[한일협정]] 대일청구권자금 사용안에 반대하여 [[필리버스터]]를 4시간 30분간 진행하였다. 이는 [[대한민국 제6대 국회|제6대 국회]]의 최장기록이다. 제8대 국회의원까지 순조롭게 3선을 기록했으나 [[10월 유신]]과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인해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고 오래도록 야인 생활을 겪어야 했다. [[1979년]] [[11월]] [[YMCA 위장결혼식 사건]]에 참석하였다가 사건에 연루되어 보안사령부로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다.
 
[[1983년]]에 [[김대중]]을 대신하여 [[김영삼]]과 [[민주화추진협의회]] 의장권한대행을 맡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신한민주당]]의 창당준비위원이 되어 [[신한민주당]] 돌풍을 일으켰다. [[1987년]]에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제13대 대선]]을 앞두고 [[통일민주당]]이 분열하였을 때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에 합류하지 않고 [[통일민주당]]에 잔류하였다. [[1990년]] [[3당합당]]에 반대하여 [[민주당 (1990년)|민주당]]에 남았다. [[1992년]]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제14대 총선]]에서 [[민주당 (1991년)|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재기하였으나, [[김대중]]의 노선을 비판하고 [[상도동계]]와도 친분을 유지하는 등의 독특한 행보로 이를 불쾌하게 여긴 [[동교동계]] 주류의 견제를 받아 정치 생활은 순탄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