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형: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태그: m 모바일 웹
편집 요약 없음
41번째 줄:
명종이 즉위하자 윤원형은 크게 세력을 얻어, 1545년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 일파와 많은 선비들을 죽였다. 이 공로로 보익공신, 위사공신 등에 책봉되었다. 이때 윤원형 일파는 [[윤임]]이 자신의 외조카인 [[계림군]]을 추대한다는 설을 퍼뜨렸고, [[정난정]]은 윤원형의 사주를 받고 이를 [[문정왕후]]에게 전했다. [[윤임]]은 귀양가던 길에 [[충청북도]] [[충주시|충주]]에서 사사당했다.
 
윤원형은 이때 [[윤임]]과 같은 외척 세력과 봉성군, 계림군 등과 같은 종친 세력 뿐만 아니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림들도 대거 같은 세력으로 몰아 처형했다.<ref name="deok01"/> 자신에게 역모의 누명이 돌아오자 두려웠던 [[계림군]]으느 도망치던 중 붙잡혀서 살해되었다. 이어 [[이기 (1476년)|이기]] 등과 함께 [[사림파]]를 제거할 계획을 세워 [[사림파]] 역시 [[윤임]]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체포, 투옥, 사형에 처한다.
 
이 공로로 [[보익공신]](保翼功臣) 3등이 되고 이어 그해 [[9월]] [[위사공신]](衛社功臣) 2등관에 녹훈된 뒤 [[한성부]][[우윤]] 서원군(瑞原君)이 되고, 그해 12월 [[호조]][[참판]]이 되었다. 윤원형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양재역 벽서 사건을 일으켜 미처 제거하지 못한 윤임의 잔존 세력과 나머지 사림 세력을 모두 조정에서 몰아냈다.<ref name="deok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