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성소수자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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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우 80년대 외국의 [[에이즈]] 위기와 남성 동성애자의 원인설이 유입되면서 정체성으로 가시화되었다. 그 동안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이미지나 대중적 인식은 남성 동성애자로 대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남성동성애자의 경우 종로나 이태원 등의 지역에서 클럽이나 바를 중심으로 하위문화가 형성되어 있으며, 지역 경제에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여성 동성애자의 경우 여성주의 운동, 담론과 관련을 맺으며 운동 사회에 활발히 주체화되고 있으나 사회적 영향력도 크지 않고 사회경제적 지위도 낮았다.
 
=== 1990년대 ===
[[1993년]] 대한민국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모임인 [[초동회]]가 결성되었으나, 1994년 초동회에서 남성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와 여성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끼리끼리]]로 분리되었다.<ref>{{웹 인용 |url= http://kscrc.org/bbs/view.php?id=press_dictionary&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1&PHPSESSID=2d6d5dd5d93cff6962ac6b6c8f269357 |제목=초동회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출판사=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 |확인날짜=2013년 12월 3일}}</ref>
PC 통신 내 동성애자 모임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으며, 1995년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각 [[대학]]을 중심으로 동성애자 모임들을 조직하기 시작하여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여성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1997년 첫 서울퀴어영화제와 대규모 성소수자 집회가 열렸다. 현재의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전신인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이 결성되었다.<ref>{{웹 인용 |url= http://kscrc.org/bbs/view.php?id=press_dictionary&page=1&sn1=&divpage=1&category=3&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9&PHPSESSID=2d6d5dd5d93cff6962ac6b6c8f269357 |제목=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 동성애자 단체) |출판사=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 |확인날짜=2013년 12월 3일}}</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