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벤스라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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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제1차 세계 대전의 결과는 독일인들이 자신들이 공간 없는 민족(''Volk ohne Raum'')이라고 느끼며, 상처 입은 국가 의식을 강하게 일으키게 했는데, 이는 민족주의 정당들, 특히 — 처벌적 전쟁 배상 조항으로 나라를 빈곤하게 하고, 군비를 감축시키고, 영토를 할양하게 하는 — [[베르사유 조약]] 조항들이 독일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주장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에 의해 이용된 문화적 감정이었다.<ref>{{서적 인용|author=Lisa Pine|title=Education in Nazi Germany|year=2010|publisher=Berg|isbn=978-1-84520-265-1|page=48}}</ref> [[바이마르 공화국]] 국내 정치에서, 독일의 [[우생학|우생학자]]들은 ''Volk ohne Raum''의 민족주의적이고 정치적인 구호를 따랐고, 독일의 (1880년대부터)감소하는 출산율을 관망하고 "독일 민족"이 활기차고 성장하는 민족이라는 대중의 믿음을 반박하는 문화적 주장인 젊음 없는 민족(''Volk ohne Jugend'')의 인종주의적 구호에 맞추었다. 각 구호가 [[인구통계학]]적 사실에 의해 반박되고 있었음에도, 민족주의자들의 레벤스라움에 대한 요구는 바이마르 시대 독일에서 사상적으로 가능한 정치임이 드러났다.<ref>{{서적 인용|author=Paul Weindling|title=Health, Race and German Politics Between National Unification and Nazism, 1870–1945|year=1993|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isbn=978-0-521-42397-7|page=343}}</ref><ref>Robert Cecil, ''The Myth of the Master Race: Alfred Rosenberg and Nazi Ideology'' p69 ISBN 0-396-06577-5</ref>
21년의
{{인용문|우리의 농민 인구[의] 증가는 동방의 슬라브 노동 계급자 무더기가 들이닥치는 것에 대한 유일한 효과적 방어이다. 6백 년 전에도 그랬듯, 독일 농민의 운명은 슬라브 인종에 대항해 어머니 땅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통해 독일인들의 유산을 보존하고 늘려나가는 것이어야 한다.<ref>Anthony Read, The Devil's Disciples, p. 15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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