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프 본 윌리엄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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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윌리엄스는 9편의 교향곡과 다른 관현악 작품들, 가곡들, 오페라와 많은 합창곡들을 발표했다. 다양한 규모와 형식을 가지고 있는 본 윌리엄스의 음악은 민족적이고 세계적인 2가지 원천으로부터 꾸준히 유도되었다. 하나는 홀스트와의 우정을 지속하면서 채짐한 영국 민요와 성가이고, 다른 하나는 [[바흐]], [[헨델]], [[드뷔시]]와 라벨의 서구적 전통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의 근본적인 본질은 어느 유력한 한 작곡가의 영향으로부터 암시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심원한 깊이를 가진다. 그의 작품은 “작곡가는 스스로를 결코 닫지 말고 예술을 생각하며, 동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살고 호흡하여 자신의 작품을 사회의 모든 삶의 표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대한 본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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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에 영국 왕립의무대원으로 참전했던 본 윌리엄스는 전쟁이 끝난 뒤인 1919년 모교인 왕립음악원 교수로 부임했다. 당시 작곡가는 47살이었다. 1921년에는 바흐 합창단의 지휘자로 부임했고 아내의 신병 치료로 1928년 사임할 때까지 <마태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 <B단조 미사> 등을 연주하며 바흐의 종교음악을 의욕적으로 재조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