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납치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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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공사 김재권은 주일 대사관 일등 서기관 신분으로 위장하고 있던 김동운에게 공작 계획의 수립을 지시했다. 김동운의 계획안을 접수한 차장보 이철희와 해외공작국장 하태준은 해외공작단장 윤진원과 함께 계획을 검토했다. 김대중을 그랜드팔레스호텔에서 직접 납치한 사람들은 이미 여러 자료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해외공작단장 윤진원, 주일대사관 참사관 윤영로, 일등서기관 홍성채·김동운, 이등서기관 유영복·유충국 등이고 일등서기관 한춘은 현지정찰임무를 수행했다. 이들 ‘행동대원’은 젊은 말단직원들이 아니었다. 당시 직급으로 윤영로와 한춘은 이사관인 2급 갑, 홍성채·김동운·유영복은 부이사관인 2급 을, 유충국만 서기관인 3급 갑으로 모두 상당히 고위직에 이른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정보요원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어설퍼 납치 현장에 수많은 유류품과 육안으로 봐도 뚜렷이 보이는 지문을 남겨놓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ref>{{서적 인용|url=|제목=유신: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 혼돈 속의 실행 준비|성=한홍구|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김대중의 납치과정에서 가장 의혹을 받은 인물이 양일동이었다. 그는 중앙정보부로부터 외교관 여권을 전달받고 출국한 것으로 밝혀졌다.<ref>{{서적 인용|url=|제목='김대중 납치사건과 중앙정보부', <김대중납치사건의 진상>, 291쪽.|성=김경재|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양일동이 일본에 머무는 동안 평소 왕래가 있던 김대중 납치 현지 책임자 김재권 공사가 양일동에게 끈질기게 접근했다. 양일동이 김대중에 비판적인 입장인 것을 알고부터는 더욱 달라붙었다. 양일동이 퇴원하여 그랜드 팔레스호텔 2212호실에 투숙한 것은 김재권이 방 세 개를 얻어 그 중에 2212호실을 양일동에게 주고, 나머지 방에는 납치범들의 ‘거사용’으로 사용하였다. 양일동이 납치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 같은 엄청난 사건을 목격하고도 40분 내지 1시간 후에야 그것도 일본 경시청이 아닌 김재권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은 풀리지 않는 의혹으로 남는다. <ref>{{저널 인용|제목=후광 김대중 평전/[13장] 토막살해 수작음모 도쿄납치사건 [87회] 토막살해 위해 배낭 등 준비|저널=|성=김상웅|이름=|url=|날짜=|출판사=}}</ref>
 
정보부원들은 원래 양일동이 묵는 2211호의 옆방인 2210호실을 예약했는데 마침 앞방인 2215호실의 문이 열려 있어 두 방에 나눠서 요원들이 대기했다. 그중 2215호에 우연히 이북 담배가 있었다는 것이고, 다량의 유류품을 남기게 된 것은 복도에서 김대중을 배웅 나온 통일당 김경인 의원과 마주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2210호실에 있던 납치대원들이 급하게 김대중을 끌고 내려가면서 2215호실에 있던 감시조가 뒤처리를 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감시조는 2210호실 상황을 보지 않고 그냥 빠져나와 버렸다. 너무나 어설펐지만 어쨌든 납치는 성공했고, 중앙정보부원들은 일본 경찰의 감시망을 따돌리고 도쿄를 빠져나와 무사히 공작선 용금호가 대기중인 오사카에 도착하여 김대중을 국내로 실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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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납치사건 진실규명》,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2007년. ([http://www.docstoc.com/profile/cyan67 이곳] 과 [http://andocu.tistory.com 이곳] 에서 문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각주 ==
{{각주|2}}
 
{{대한민국의 기타 사건 및 사고}}
 
[[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