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학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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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산 완투승 1위 (117승 중 74승이 완투승)
* 롯데 소속으로 뛰었던 투수들 중 가장 많은 승수를 올림.
 
== 고독한 황태자 ==
{{출처 필요 문단|날짜=2013-6-6}}
윤학길은 [[최동원]]의 트레이드 이후 [[롯데 자이언츠]]의 마운드를 홀로 지켰다. 윤학길이 1선발로 활약하던 대부분의 시기 동안 롯데에는 뛰어난 구원 투수가 존재하지 않았고, 윤학길의 뒤를 받쳐줄 다른 뛰어난 선발 투수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통산 100번의 완투를 기록할 정도로 긴 이닝을 소화하며 마운드에서 고독한 싸움을 오랜 기간 이어갔고, 이로 인해 고독한 황태자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
 
윤학길에게 황태자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그가 만년 2인자 였기 때문이다. 일단 윤학길은 해태의 선동열과 동시에 선수 생활을 했으며 그로 인해 단 한번도 최고 투수라는 칭호를 얻은 적이 없다. 다승왕은 물론이고 100완투라는 대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15승 이상과 3점대 평균 자책점을 밥먹듯이 기록했음에도 단 한 번의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조차 수상하지 못 했다.
 
팀내에서도 입단 당시에는 최동원에 밀려 별 주목을 받지 못 했고 최동원의 은퇴 이후에는 당시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을 받고 들어온 "슈퍼 베이비" 박동희로 인해 스포트라이트에서 또 한 발 밀려나게 된다. 또한 17승을 올리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1992년에도 정규 시즌에서는 염종석에, 포스트시즌에서는 박동희에게 팬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바람에 뛰어난 활약 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 한다.
 
이 "황태자"라는 말은 항상 누군가에게 밀려 만년 2인자 자리에 머물러야 했던 윤학길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선동열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투수들 중에 이강철이나 한용덕 정도를 제외하면 우완투수중에는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투수였고 꾸준함에 있어서는 가히 그 짝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윤학길이 주무기는 당시로서는 광속구 수준이었던 140km/h대 초중반의 직구와 슬라이더, 그리고 커브였으며 흔희 알려진 사실과는 달리 제구력도 뛰어난 편이었다. 하지만 몸이 늦게 풀리는 편인데다가 경기 초반 실점이 많은 편이어서 많은 팬들에게 선동열처럼 경기를 완벽히 지배한다는 인상은 주지 못 했다. 그러나 100완투라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웬만해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투수가 윤학길이었고 특히 초반 3이닝만 큰 위기없이 넘기면 어렵지 않게 경기를 승리로 매조지하는 선수이기도 했다.
 
윤학길의 불행이라면 그의 전성기 동안 팀을 같이 견인할 만 한 대형투수가 있었던 시절이 얼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1992년을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하지 못 하고 있는데 1992년의 경우에도 혜성처럼 나타난 고졸신인(염종석)과 정규 시즌에서의 부상과 부진을 털고 포스트시즌에서 시쳇말로 미쳐버린 박동희가 팬들의 뇌리에는 더 깊게 남아 있지만 그 해 무려 17번의 승리와 3점대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던 윤학길이 아니었다면 우승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통산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