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달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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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년(인조 12)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 병조좌랑, 시강원사서(侍講院司書), 정언(正言), [[지평]](持平), 수찬(修撰)을 거쳐, 1636년에 [[부교리]](副校理)가 되었다.
 
[[청나라]]와의 화친을 위해 주화파 최명길(崔鳴吉) 등의 주장으로 사신을 교환하게 되자, 최명길을 탄핵하는 소를 올렸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들어가 청나라와의 화의를 끝까지 반대하였다. 이듬해 인조가 청에 항복하자, 화의를 반대한 죄로 [[윤집]](尹集)·[[홍익한]]과 함께 청에 잡혀가 청나라로 끌려갔다.
 
적장 용골대(龍骨大)는 그의 뜻을 꺾기 위해 처자를 거느리고 청나라에 와 살라고 회유하였으나, 오달제는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불의(不義)라고 하고 저들의 말을 좇으면 오랑캐가 되는 것이라 하여 끝까지 항변하여 마침내 심양성(瀋陽城) 서문 밖에서 [[윤집]]·[[홍익한]](洪翼漢)과 함께 사형 집행되었다. 이후 이들을 [[삼학사]](三學士)라 하여 절개와 충성을 높이 기리게 되었다.
 
[[영의정]]에 추증하고 시호를 내려 [[경기도]] 광주(廣州)의 [[현절사]](顯節祠), 평택의 포의사우(褒義祠宇), 충청도 홍산(鴻山)의 창렬서원(彰烈書院), 경상도 영주의 장암서원(壯巖書院), 고령의 운천서원(雲川書院)에 제향되었다.
 
== 가족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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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조선|한국사}}
 
[[분류:1609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