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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순수한 우라늄-235의 물리적 성질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플루토늄의 존재는 1941년에 와서야 [[글렌 시보그]]의 연구팀이 발견하였다. 버클리의 과학자들은 우라늄-235의 핵분열에 의한 폭발과 우라늄-238을 플루토늄으로 변환시킨후 핵분열을 일으키는 방식의 폭발을 놓고 회의를 계속하였다. 게다가 당시에 플루토늄은 [[사이클로트론]]에서 소량이 검출된 수준에 불과하였다.<ref>{{harvnb|Hewlett|Anderson|1962|pp=33–35}}.</ref> 심지어 1943년 12월까지도 비축된 플루토늄의 양은 2 [[밀리그램]]에 불과하였다.<ref>{{harvnb|Groves|1962|p=41}}.</ref> 또한, 임계 질량에 이르게 하는 방법 역시 다양한 것들이 제시되었다. 한 쪽에 "반응물"을 모아놓고 원통 모양 플러그인 "간섭자"를 쏘아 임계 질량에 도달하는 방법에서부터 둘로 나뉜 반응물을 서로 미끌어지도록 강하게 결합시켜 임계 질량에 도달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었다.<ref>{{harvnb|Serber|Rhodes|1992|p=21}}.</ref> 폭발 양상에 대해서는 [[리처드 톨만]]은 [[타원|타원형]] 폭발을 제시하였는데, 그는 타원형 폭발이 [[자체 촉매 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폭발력을 보다 강화시킬 것으로 보았다.<ref>{{harvnb|Hoddeson|Henriksen|Meade|Westfall|1993|pp=54–56}}.</ref>
 
핵분열을 이용한 폭탄 제조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 완성될 무렵, 버클리의 물리학자들은 [[핵융합]]을 통해 [[중수소]]를 [[삼중수소]]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이것을 "슈퍼 원자 폭탄"이라 불렀는데, 이 이론은 전쟁 이후 [[수소 폭탄]]으로 현실화되었다.<ref>{{harvnb|Rhodes|1986|p=417}}.</ref> 당시에 테일러는 핵융합 폭탄을 계속하여 기획하였지만 베스는 이를 번번히 거절하였고, 결국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 폭탄을 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ref>{{harvnb|Hoddeson|Henriksen|Meade|Westfall|1993|pp=44–45}}.</ref> 한편, 테일러는 원자 폭탄의 폭발을 기폭제로 하여 [[질소]] [[원자핵|핵]]의 핵융합 반응을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ref>{{harvnb|Bethe|1991|p=30}}.</ref> 베스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보았고<ref>{{harvnb|Rhodes|1986|p=419}}.</ref>, "자가 증식하는 핵 연쇄 반응은 시작될 수 없다"고 보고하였다.<ref>{{서적 인용 |authorlink=:en:Emil Konopinski |last=Konopinski |first=E. J |first2=C. |last2=Marvin |first3=Edward |last3=Teller |authorlink3=Edward Teller |제목=Ignition of the AtmAtmosphere with Nuclear Bombs |issue=LA-602 | institution=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 |url=http://www.fas.org/sgp/othergov/doe/lanl/docs1/00329010.pdf |format=PDF |date=1946, declassified February 1973 |accessdate=2008-11-23}}</ref> 실제 수소 폭탄은 1952년에 처음으로 제작되었다.
제 수소 폭탄은 1952년에 처음으로 제작되었다.
 
== 조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