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박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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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령박씨(高靈朴氏) 시조 박언성(朴彦成)은 [[박혁거세]]의 29세손인 [[신라 경명왕]]의 둘째 아들 고양대군(高陽大君)이다.
 
고령 박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56명, 상신 1명, 청백리 4명을 배출하였다.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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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고령 박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56명, 상신 1명, 청백리 4명을 배출하였다.
 
* [[박은 (1479년)|박은]](朴誾, 1479년 ~ 1504년) : 1495년(연산군 1) 17세로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같은 해 사가독서자(賜暇讀書者) 선발에 뽑혔다. 그 뒤에 곧 승문원권지(承文院權知)를 받고 홍문관에 선택되어 정자가 되고, 수찬에 있으면서 경연관을 지냈다. 1498년(연산군 4) 20세의 약관으로 유자광(柳子光)의 간사함과 성준(成俊)이 유자광에게 아첨함을 탄하는 소를 올려 오히려 그들의 모함을 받아 파직되었고, 1501년(연산군 7) 23세에 옥에 갇혔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에 동래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의금부에 투옥되어 사형을 당했다. 3년 뒤인 1507년(중종 2) 신원되고 도승지로 추증되었다. 해동강서파(海東江西派)의 대표적 시인이며, 절친한 친구인 이행(李荇)이 그의 시를 모아 『읍취헌유고』를 냈다.
* [[박공량]](朴公亮, ? ~ 1556년) : 조선 중기의 문신 · 서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