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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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순조]] 대부터 [[조선 철종|철종]] 대의 집권 세력이던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이조판서]]를 지낸 [[김교근]]이며, 아버지인 [[김병교]]는 안동 김씨를 몰아낸 [[흥선대원군]]도 배척하지 않고 이조판서로 중용한 인물이었다.
 
[[1871년]] [[조선의 과거 (조선)제도|과거]]에 급제하여 관료로 근무했다.
 
[[1894년]] [[형조판서]]와 [[공조판서]]를 지냈고, 같은 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김문현]]의 후임으로 [[전라도]] 감영의 감사로 임명되었다. 농민들의 원성을 듣고 있던 김문현을 대신해 회유책으로 김학진을 후임에 임명한 것으로 미루어, 당시 척화파 관료 중 신망이 높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f>사이버인권관, [http://cyberhumanrights.com/Kor/Information/1st/PERSONVIEW.html?lang=KOR&no=90&lpage=22&code1=HCL03 인권인물 - 김학진]</ref> 김학진은 유화 정책을 써서 '폐정개혁 12개 조항'에 합의하고 농민군과 관군 사이에는 화약이 맺어졌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