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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의 계획 ==
소련군 태평양 함대에 입대하여 웅진, 나진, 청진 등 상륙작전에 활약하여 적기훈장을 수여하는 등 해방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수립 이후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에 해당)을 지내기도 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표적 [[소련파]] [[정상진]]은 "북한은 해방 후 20년 역사를 위조했다"며 " 일본군을 내몬 뒤 소련 정부에서 북한 정권 수립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해방 후 원산항(港)에 귀국하는 김일성을 맞으러 간 것도 접니다. 소련은 고려인을 통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어요. 1945년부터 1965년까지 북한에서 발표된 모든 연설문은 다 소련에서 작성됐어요."라고 폭로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19/2009061901137.html "나도 북침인 줄 알고 6·25 참전했어" ] 2009.06.20 조선일보</ref>
 
2010년에는 1945년 12월 29일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소련군 진주 후 북한의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등 3개도를 방문조사한 뒤 만든 총 13p 분량의 보고서가 공개되었는데, 보고서 내용에는 258 소총사단장 드미트리예프 대좌는 “조선사람은 35년간 노예로 있었다. 좀35좀 더 노예로 있게 하자”는 말도 남겼다고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ref>[http://news.donga.com/3/all/20100310/26736705/1 1945년 北 진주 소련의 붉은 군대는 해방군 아닌 약탈군이었다] 2010-03-10 동아일보</ref>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