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기사르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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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기사르 전투'''는 [[1177년]] [[11월 25일]] [[팔레스타인]] 몽기사르에서 벌어진 [[예루살렘 왕국]]과 [[아이유브 왕조]]의 전투이다.
== 배경 ==
1177년 [[십자군 국가]]인 예루살렘 왕국은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예루살렘의 보두앵 4세|국왕 보두앵 4세]]는 문둥병에 걸려있었고 후사가 없었다. 그의 여동생 [[예루살렘의 시빌라|시빌라]]는 남편 [[아스칼론의 기욤]]이 죽고 임신한 상태였기에 왕국의 귀족들은 다른 신랑감을 구하고 있었다. 보두앵은 [[비잔티움 제국]]의 해군력에 힘입어 이집트를[[이집트]]를 공략할 계획을 세웠으나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이집트에서 세력을 키우던 [[살라흐 앗 딘]]은 예루살렘 왕국을 공격하기 위해 출병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보두앵은 [[샤티용의 레날드]]와 함께 살라흐 앗 딘을 저지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출발하여 아스칼론으로[[아스칼론]]으로 향했다. 레날드는 [[1176년]] 까지 [[알레포]]에 포로로 감금되어 있었으며 환자인 보두앵 왕을 대신해 군사를 이끌었는데 살라흐 앗 딘과 이슬람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또다른 십자군의 장군은 [[성전 기사단]]의 기사단장인 외드였는데 그는 80명의 성전 기사단 기사를 이끌고 함께 출병했다.
 
== 전투 ==
살라흐 앗 딘은 보두앵이 소수의 병력으로 감히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병력을 넓게 포진하여 랄마람라, 지라, 아르수프를[[아르수]]프를 차례로 공략하였고 주변지역을 약탈하였다. 예루살렘 왕국의 연합군은 이슬람군의 포위를 뚫고 해안을 따라 진군하여 이슬람군이 예루살렘에 먼저 도착하기 전에 저지하려하였다.
 
십자군 연합군은 랄마람라 근처의 몽기사르에서 살라흐 앗 딘의 군대와 만났다. 살라흐 앗딘은 미처 에상치예상치 못한 적을 만나 당황하였고 급하게 흩어진 병력을 불러모아 회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기병]]들은 [[이집트]]에서 출병한 이후로 쉬지 못하여 지친 상태였고 보병도 마찬가지 였다. 살라딘이 자신의 병력을 모아 뒤로 돌아 가는동안 십자군은 중앙을 공격했다.
 
이슬람 진영은 급격히 무너졌고 중앙이 돌파당해 보급품을 십자군에 빼았겼다. 이 전투에서 살라흐 앗 딘의 조카 타키 앗 딘의 아들이 전사했고 율법학자 디야 앗 딘이 포로로 붙잡혔다. 살라흐 앗 딘도 거의 붙잡힐 뻔 하였으나 경주용 [[낙타]]를 타고 있었기에 가까스로 도망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이슬람 병력의 9할이 죽거나 부상당하여 괴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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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패배로 살라흐 앗딘은 상당한 타격을 입고 이집트에서 힘을 기를 수 밖에 없었다. [[1178년]] 살라흐 앗 딘은 십자군과 휴전 협정을 맺고 약 1년간 양측은 소강상태를 보였다.
 
한편 [[트리폴리의 레몽 3세]]와 [[보에몽 3세]]는 보두앵과 별도로 시리아의 하림을 공격하였다 하림의 공성전은 [[1178년]]까지 계속 되었는데 살라흐 앗 딘은 몽기사르의 패패로패배로 하림을 도우러 갈 수 없었다.
 
[[분류:117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