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레르미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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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교황 우르바노 2세]]는 그를 소환, 앞세워 전쟁을 교묘히 선동했고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다.
그런데 피에르는 엉뚱한 생각을 품고 [[기사 레이날도]], [[무일푼의 월터]]라는 사람들과 함께 일반 민중들을 모아서 정식 십자군보다 먼저 출발했다. 이를 군중 [[군중 십자군]]이라고 한다.
 
군중 십자군은 가는곳마다 약탈을 자행하다가 헝가리 기병에게 떼죽음을 당하고, 베오그라드의[[베오그라드]]의 중장보병에게 대부분 죽고 결국 니케아에서 [[셀주크 투르크]] 술탄 [[클르츠킬리지 아르슬란 1세]]에게 전멸당해, 기사 레이날도는 항복, 피에르는 목숨만 건져 달아난다.
 
그 뒤 피에르는 1차 십자군에 합류하지만 그의 선동은 더이상 통하지 않았고 명목상 십자군 사령관인 아데마르 주교와 마찰을 빚게 된다. [[안티오키아 전투공방전]]에서 피에르는 [[롱기누스의 창]]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그 전투에서 십자군은 승리한다. 그러나 결국 [[롱기누스의 창]]의 진위여부 때문에 피에르는 [[시죄법]] 재판을 받았고, 죽고 말았다. 이로 인해 [[롱기누스의 창]]을 옹호하던 [[레몽]]은 힘을 잃고, [[보에몽]]의 입김이 세지게 되었다.
 
은자 피에르의 죽음은 여러 설이 있는데, [[롱기누스의 창]]을 발견한것이 은자 피에르라면 그는 [[시죄법]] 재판으로 죽은 것이 되고, 만약 [[롱기누스의 창]]을 발견한 것이 은자 피에르가 아니라 동명이인 [[피에르 바톨로메오]]라면 은자 피에르는 서유럽에 돌아가 [[1115년]] 자연사하고 동명이인 피에르가 [[1098년]] [[시죄법]]으로 죽은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