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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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유람 ===
{{참고|수신사}}
[[1880년]] 여름 그는 [[윤웅렬]](尹雄烈), [[이용숙]](李容肅), [[지석영]](池錫永) 등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김홍집 일행은 [[1880년]] 7월 일본 기선 〈치토세지토세 마루〉 편으로 [[부산항]]을 통해 [[도쿄]]에 도착했다. 도쿄 체재 1개월 동안 이들은 일본 정부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일본의 근대화된 모습을 두루 살폈다. 그런 한편 일본의 감언이설과 유혹에 빠져들어 [[친일파]]로 변신하게 되었다. 이들은 수신사 본래의 사명을 망각하고 일본 정부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바, 인천을 개항장으로 지정토록 하고, 일본 공사의 한성부 주재 등이 필요하다고 본국 정부에 품신하는 등 일본의 주구 노릇을 하기에 이르렀다.<ref>{{서적 인용
|저자=[[김삼웅]]
|제목=친일정치 10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