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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선]] 사회가 매관매직, 혈연과 학연, 지연에 의한 인사 채용 등으로 부패했다고 보고, 부패한 체제를 일소하기 위해서는 혁명,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갑신정변]] 주동 세력들의 연령이 너무 어리다는 점과 동원할 군사력은 자신의 군사력과,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등 집안의 재력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절망한다. 이후 그는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고, 아들 [[윤치호]]는 아버지가 소신도 신의도 없다며 반감을 들고, 대들며 따지기도 했다.
 
이후 온건 개화파로[[수구파|온건개화파]]로 활동하며 [[1884년]] [[7월]]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하고, [[7월 27일]] [[총융청]] [[중군]]에 임명되어 [[한성]]으로 상경했다가 다음날인 [[7월 28일]] [[친군전영]] [[정령관]](親軍前營正領官)이 되었다. 그해 [[8월]] 동지중추부사, [[8월 16일]] 동지훈련원사, [[8월 25일]] 친군전영 우정령관(親軍前營右正領官) 등을 역임하였다. [[9월 14일]] 궁술에서 명중하자, [[9월 16일]] [[고종]]의 명으로 노력의 공로로 특별히 [[가의대부]]로 승진하였다.
 
{{인용문|이번에 전영 상번 병정의 조련을 보니, 활시위를 당기고 화살을 맞추고 걷고 치는 것이 자못 볼 만하였다. 여러 해 노력하고 매우 애쓴 것이 가상하니, 전 남병사 윤웅렬(尹雄烈)을 특별히 가자하라.<ref>승정원일기 1884년 09월 14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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