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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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일기는 총 4권이 있으며, 당시의 당나라의 풍습과 관습, 문화 등 많은 사실적인 기록들이 들어가 있다. 특히 2권에서는 그는 [[신라방]]에서 많은 신세를 진 듯 그의 책에서“신라인 해상왕 [[장보고]]의 통치 아래 있던 중국 내 [[신라방]]이 자신에게 베풀어진 배려가 아니었으면, 돌아가기 힘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엔닌이 소속되었던 연력사에는 [[장보고]] 기념비를 비롯해 당시의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고, 적산법화원에서 오랫동안 신세를 지었기 때문에 돌아와서 교토의 헤에이산에헤에이산(比叡山)에 엔랴쿠자의 별원으로 적산선원(赤山禪院, 세키잔젠인)을 세웠다. (지금도 관광이 가능하다.)
 
시대는 달리하지만, 20세기 초 둔황의 유물을 탐구했던 근처의 사원인 서본원사(니시혼간지)의 승려인 오타니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측된다. 오타니는 둔황의 유물을 일본으로 반출한, 둔황학의 몇 안되는 유물수집자들 중의 하나이며, 왕오천축국전을 집필한 혜초가 신라의 고승임을 알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