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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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 주'''({{llang|ms|Sabah}})는 [[보르네오 섬]]의 북쪽 일부에 위치한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시아의 행정 구역|주]]이다. 말레이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주이며 남서쪽에 경계를 하는 [[사라왁 주]] 다음으로 말레이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주이다. 남쪽으로는 [[인도네시아]]와 경계를 이루며, 서쪽으로는 [[라부안]] 연방직할시와, 동쪽으로는 필리핀과 해양 경계를 이룬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주임에도 불구하고 사바 주는 분쟁 영토로 남아 있다. [[주도]]는 [[코타키나발루]]이며, 과거에는 '제셀턴'으로 알려졌었다. 면적은 73,620㎢이고 인구는 2,603,485명(2000년 기준)이다. 사바 주는 [[필리핀]] 주위에 태풍 지대 바로 남쪽이 되는 위치였기 때문에 "사바, 바람 아래의 땅"("Sabah, negeri di bawah bayu")으로 알려진다.
 
== 역사 ==
{{참조|사바의 역사}}
7세기 이후 [[중국인]]과 교역을 한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지난 여러 세기 동안 필리핀과의 접촉만을 해왔다. 태풍지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술루 해적들은 "바람 아래의 땅"이라고 불렀다. 1882년까지 브루나이 술탄령으로 있었다.<ref name="century">{{웹 인용|url=http://www.bt.com.bn/life/2008/09/21/how_brunei_lost_its_northern_province|title=How Brunei lost its northern province|author=Rozan Yunos|publisher=[[The Brunei Times]]|date=21 September 2008|accessdate=28 October 2013|archiveurl=http://web.archive.org/web/20140617040008/http://www.bt.com.bn/life/2008/09/21/how_brunei_lost_its_northern_province|archivedate=17 June 2014|deadurl=no}}</ref>
 
=== 초기 역사 ===
약 2,3만년 전 사람들이 이곳에 이주해 온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은 주로 오스트랄로이드 또는 네그리토인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3000년 무렵 오스트로네시안 몽골로이드인이 추가로 이주해왔다.
 
[[분류:말레이시아의 주]]
=== 브루나이 제국에서 술루 술탄령까지 ===
[[파일:Old Flag of Brunei.svg|200px|섬네일|왼쪽|브루나이 제국의 기]]
7세기 이후 [[중국인]]과 교역을 한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지난 여러 세기 동안 필리핀과의 접촉만을 해왔다. 태풍지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술루 해적들은 "바람 아래의 땅"이라고 불렀다.
 
7세기 경 비자야푸라(스리비자야 제국 지류)가 브루나이 제국이 보르네오 북동부 해안 일대에 존재하도록 하는 데 큰 수혜자로 간주된다.<ref>{{서적 인용|author=Wendy Hutton|title=Adventure Guides: East Malaysia|url=http://books.google.com/books?id=YWO5Va53GkgC&pg=PA31|accessdate=2013년 5월 26일|date=2000년 11월|publisher=Tuttle Publishing|isbn=978-962-593-180-7|pages=31–}}</ref> 9세기 경 존재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왕국은 포니였다. 포니는 브루나이 강 하구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브루나이 술탄령 이전의 왕국으로도 간주된다.<ref>{{서적 인용|author1=Barbara Watson Andaya|author2=Leonard Y. Andaya|title=A History of Malaysia|url=http://books.google.com/books?id=5GSBCcNn1fsC&pg=PA57|accessdate=2013년 5월 26일|date=1984년 9월 15일|publisher=Palgrave Macmillan|isbn=978-0-312-38121-9|pages=57–}}</ref> 브루나이 술탄의 지배는 지도자가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후 시작되었다. 1473년부터 1524년까지 브루나이를 통치한 제6대 술탄 볼키아흐의 재직 기간 동안, 술탄령의 제해권은 사바를 넘어 술루 군도, 북으로는 마닐라, 심지어 사라왁에 남쪽으로는 반자르마신까지 확대되었다.<ref>{{서적 인용|author=Graham Saunders|title=A history of Brunei|url=http://books.google.com/books?id=SQ4t_OJgSjAC&pg=PA40|accessdate=2013년 5월 26일|year=2002|publisher=Routledge|isbn=978-0-7007-1698-2|pages=40–}}</ref> 1658년 브루나이 술탄은 후반기 술탄령 내 시민 내전을 해결한 보상으로 보르네오의 북부 및 동부 지역을 술루 술탄에게 양도했다고 하지만, 많은 자료들이 브루나이는 사바의 그 어떠한 부분도 술루 술탄령에 양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ref name="ssc">{{웹 인용|url=http://www.bt.com.bn/2013/03/07/sabah-and-sulu-claims|title=Sabah and the Sulu claims|author=Rozan Yunos|publisher=[[The Brunei Times]]|date=2013년 3월 7일|accessdate=2013년 9월 20일|archiveurl=http://web.archive.org/web/20140617035533/http://www.bt.com.bn/2013/03/07/sabah-and-sulu-claims|archivedate=2014년 6월 17일|deadurl=no}}</ref>
 
=== 영국령 북보르네오 회사 ===
[[파일:BritishNorthBorneoCharteredCompany.png|thumb|left|[[북보르네오 특허 회사]]의 취체역회(1899년)]]
[[파일:Brunei (left) Sulu (right) Overbeck.jpg|thumb|150px|right|'''(좌)''' 1877년 12월 29일 [[브루나이의 술탄]] [[압둘 모민]]이 첫 번째 양보 조약에 서명했다.<ref name="century"/><br />'''(우)''' [[술루 술탄]] 술탄 자말랄루라잠이 1878년 1월 22일 두 번째 양보 조약에 서명했다.<ref name="ssc"/>]]
1761년 [[스코틀랜드]]의 항해가이자 영국령 동인도 회사의 장교였던 [[알렉산더 달림플]]이 술루 술탄과의 조약을 마무리하였으며, 이에 따라 술루 지역에서 교역소를 세울 수 있도록 허락받았지만 실패했다.<ref>{{서적 인용|author=Howard T. Fry|title=Alexander Dalrymple (1737-1808) and the Expansion of British Trade|url=http://books.google.com/books?id=flfYsDjH_M4C&pg=PA72|accessdate=2013년 5월 20일|year=1970|publisher=Routledge|isbn=978-0-7146-2594-2|pages=68–}}</ref> [[1846년]] 브루나이 술탄이 사바 서해안 앞바다의 라부안 섬을 영국에 양도했으며, 라부안은 후에 1848년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1877년]] 사바도 영국에 양도되었으며, 1878년 술루 술탄이 사바의 동부 지역까지 양도했다.<ref>{{서적 인용|author=Charles ALfred Fisher|title=South-East Asia: A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Geography|url=http://books.google.com/books?id=dHsOAAAAQAAJ&pg=PA147|accessdate=26 May 2013|year=1966|publisher=Taylor & Francis|pages=147–|id=GGKEY:NTL3Y9S0ACC}}</ref><ref>{{서적 인용|author=Ooi Keat Gin|title=Southeast Asia: A Historical Encyclopedia, from Angkor Wat to Timor. R-Z. volume three|url=http://books.google.com/books?id=QKgraWbb7yoC&pg=PA251|accessdate=26 May 2013|year=2004|publisher=ABC-CLIO|isbn=978-1-57607-770-2|pages=251–}}</ref><ref>{{서적 인용|author=Keat Gin Ooi|title=Southeast Asia: A Historical Encyclopedia, from Angkor Wat to East Timor|url=http://books.google.com/books?id=QKgraWbb7yoC&pg=PA265|date=1 January 2004|publisher=ABC-CLIO|isbn=978-1-57607-770-2|pages=265–}}</ref> 일련의 이주 후 사바의 권리는 1881년 알프레드 덴트에게 양도되었으며, 그는 동년 영국령 북보르네오 임시협회 (Ltd)를 설립했다(예전에는 영국령 북보르네오 회사).<ref name="Malaysia and Its Neighbours, The World studies series">
{{서적 인용|title=Malaysia and Its Neighbours, The World studies series|author=J. M. Gullick|url=http://books.google.com/?id=ykM9AAAAIAAJ&pg=PA148&dq=%22In+1877+and+1878+the+Sultans+of+Brunei+and+of+Sulu%22#v=onepage&q=%22In%201877%20and%201878%20the%20Sultans%20of%20Brunei%20and%20of%20Sulu%22&f=false|accessdate=17 November 2012|year=1967|publisher=Taylor & Francis|isbn =9780710041418|pages=148–149|postscript=}}</ref> 이듬해 영국령 북보르네오 회사가 설립되었고 쿠닷이 수도가 되었다. 1883년 수도는 산다칸으로 이전되었으며 1885년 [[영국]], [[스페인]], [[독일]]이 마드리드의정서를 체결함에 따라 스페인의 술루 군도 지배를 인정하는 한편 스페인의 북보르네오 영유권 주장을 철회하도록 했다.<ref>{{저널 인용|title=Protocol of 1885|publisher=Sabah State Attorney-General's Chambers|accessdate=11 October 2009|url=http://www.lawnet.sabah.gov.my/Lawnet/SabahLaws/Treaties/Protocol%28Madrid%29.pdf}}</ref> 북보르네오는 1888년 영국의 피보호국이 되었다.
 
=== 제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지배 ===
{{참조|일본령 보르네오}}
[[파일:Sandakan Sabah POW-Camp AerialView AWM-044659.jpg|thumb|right|[[산다칸 포로 수용소]]의 조감도. 영국령 북보르네오 회사가 실험적인 농사를 하던 곳이었으나, 후에 [[일본 제국|일제]]가 이곳을 포로 수용소로 만들어 놓았다.<ref>{{웹 인용|url=http://www.dva.gov.au/commems_oawg/OAWG/war_memorials/overseas_memorials/malaysia/audio_guide/Pages/6Dailylife.aspx|title=Daily life (Info of the Sandakan Memorial Park)|work=[[Government of Australia]]|publisher=[[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Australia)|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date=15 April 2011|accessdate=22 September 2014}}</ref>]]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1월 1일 [[일본]]이 라부안을 점령했고, 그 뒤 북보르네오의 타 지역들을 침공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은 북보르네오와 그 일대의 섬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연합군의 포격으로 산다칸을 포함한 많은 지역들을 파괴했으며, 특히 산다칸은 땅 자체가 심하게 파괴되었다. [[1946년]]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한때 산다칸에서는 일본이 북보르네오에서 온 영국인과 호주인의 포로들을 자신들이 운영한 잔악한 포로 수용소에 수용한 적이 있었다. 수감자들은 악명 높은 비인간적 환경 속에서 고통을 겪었으며, 연합군의 포격이 일어나자 일본은 자신들의 포로 수용소를 라나우 내륙으로부터 260㎞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2,504명의 수감자들이 줄어든 후, 모든 수감자들이 악명 높은 "산다칸의 죽음의 행진"을 강요당했다. 6명의 호주인 수감자를 제외한 전원이 숨졌다. 전쟁은 1945년 9월 10일 끝났다. 일본의 항복 이후 북보르네오는 영국 군령이 되었고, 1946년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제셀턴(현 코타키나발루)이 산다칸을 대신할 새 수도가 되었으며, 영국의 지배는 1963년까지 계속되었다.
 
=== 독립과 말레이시아로의 합병 ===
{{참조|사바 (1963년)}}
[[파일:Sabah during the formation of Malaysia (16 September 1963).jpg|thumb|left|1963년 9월 16일 [[툰 푸아드 스테픈스]](좌)가 당시 [[말라야 연방]]의 부총리였던 [[압둘 라자크 후세인]](우)과 [[무스타파 하룬]](우측 두번째)과 함께 제셀턴의 파당 머르데카에서 말레이시아의 탄생을 선언했다.]]
[[1963년]] 8월 31일 북보르네오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ref name="Group">{{서적 인용|author=Oxford Business Group|title=The Report: Sabah 2011|url=http://books.google.com/books?id=nKJoQ4o-_DsC&pg=PA13|accessdate=26 May 2013|publisher=Oxford Business Group|isbn=978-1-907065-36-1|pages=13–}}</ref><ref name="SG">{{서적 인용|author=Frans Welman|title=Borneo Trilogy Volume 1: Sabah|url=http://books.google.com/books?id=glG-WBH8hkQC&pg=PA159|accessdate=28 May 2013|publisher=Booksmango|isbn=978-616-245-078-5|pages=159–}}</ref> 1962년 코볼드 위원회가 사바, 사라왁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독립을 결정했고, 이어 말레이시아로 편입되게 하였다(실제로는 빨리 독립하려는 취지였다). 초기 사바의 지도자들은 민족별/종교별로 다양했는데, 무스타파 하룬은 무슬림을 대변했는 가 하면 툰 푸아드 스테픈스는 비무슬림을 대변, 쿠샥츄는 중국인을 대변했다. 말레이시아 조약과 20조항 조약에 대한 논의가 끝난 후, 1963년 9월 16일 북보르네오는 '사바'가 되어 사라왁, 싱가포르, 말라야와 함께 신설 말레이시아를 출범시켰다.<ref>[http://www.un.org/News/Press/docs/2006/org1469.doc.htm United Nations Member States]</ref><ref name="multiple">[http://www.sabah.org.my/bi/know_sabah/history.asp "Sabah's Heritage: A Brief Introduction to Sabah's History"], ''[[Muzium Sabah]], Kota Kinabalu''. 1992</ref><ref>Ramlah binti Adam, Abdul Hakim bin Samuri, Muslimin bin Fadzil: "Sejarah Tingkatan 3, Buku teks", published by Dewan Bahasa dan Pustaka (2005)</ref>
 
말레이시아가 결성되기 전부터 1966년에 이르기까지, 인도네시아는 영국이 말라야를 돌려주고 말레이시아가 결성된 후까지 매우 혹독한 정책을 택했다. 이 알려지지 않은 전쟁은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카르노가 해당 지역에서 영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을 막고 보르네오 전체를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지배하로 넣으려 하는 과정에서 막아졌다. 툰 푸아드 스테픈스가 초대 주수상이 되었다. 초대 주지사는 무스타파 하룬이었다. 1967년 첫 총선이 열렸고, 2013년까지 총 12번의 총선이 있었다. 2013년 총선 전후로 총 10명의 주지사와 14명의 주수상이 있다. 1976년 6월 14일 사바 정부는 연방정부 소속의 석유, 가스 기업인 페트로나스와 조약을 맺었으며, 석유 추출 권리 및 사바 영해에서 발견된 석유에 대한 수익을 버는 대신 5%의 세입을 로열티로 붙이는 것을 승인했다.<ref>{{뉴스 인용|publisher=[[Daily Express (Sabah)|Daily Express]]|date=19 June 2004|title=More revenue from oil|accessdate=19 September 2009|url=http://www.dailyexpress.com.my/print.cfm?NewsID=27499}}</ref>
 
한편 사바 서부 앞바다에 있던 섬도시 라부안이 말레이시아 연방정부령으로 양도되었으며, 1984년 4월 16일 쿠알라룸푸르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연방직할시가 되었다. 2000년 주도인 코타키나발루가 시로 승격되었으며, 말레이시아에서 여섯번 째로 큰 도시이자 사바의 최대도시가 되었다. 동년 키나발루 국립공원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나라의 첫 유산이 되었다. 2002년 국제사법제판소가 인도네시아가 영유권을 행사했던 시파단 섬 및 리기탄 섬에 대해 말레이시아 사바 주 소유라고 판결했다.
 
=== 필리핀의 주장 ===
1960년대초 필리핀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이 영토에 대한 소유권을 다시 요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은 사바 주 일부 지역에 관한 분쟁을 외교문제화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ref>문정인 외,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연세대학교출판부(2006) 505쪽</ref>
 
== 지리 ==
[[파일:MtKinabalu view from kundasan.jpg|thumb|right|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높은 키나발루 산]]
[[보르네오섬]] 북부지방을 차지하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사라왁, 남쪽으로 [[칼리만탄]](인도네시아령 보르네오)과 경계를 이루며 [[남중국해]], 술루 해, 셀레베스 해에 걸쳐서 둘쭉날쭉한 해안선이 1,290~1,450㎞쯤 뻗어 있다.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던 시기에는 북(北)보르네오라고 불렀다. 키나발루 산(4,101m)이 우뚝 솟아 있다. 크로커 산맥, 테루스마디 산맥, 위티 산맥이 크게 뒤엉켜 해발 1,200~1,500m의 봉우리들이 여기저기 솟아 있는 험준한 내륙지방을 형성한다. 크로커 산맥과 서해안 앞바다 사이에는 인구가 밀집한 해안평야가 널리 펼쳐져 있으며 테놈·탐부난·크닝아우 등의 평야가 내륙의 산괴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동부 저지대는 부분적으로 개석(開析)된 준평원이다.
[[파일:Kudat Sabah Tanjung Simpang Mengayau-23.jpg|thumb|left|보르네오 섬의 북쪽 끝]]
 
== 산업 ==
20세기초 대농장 농업이 시작된 이후 슴포르나 반도와 세그마 계곡에서는 담배를, 쿠다트 지구에서는 코코넛을, 산디칸 지구에서는 기에나 기름야자 등을 재배하고 있다. 서해안 평야에서는 쌀과 고무를 재배하고 있다. 쌀을 생산하는 논이 상당히 많고 관개도 하고 있으나 수요를 충당하지 못해 타이 등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출품으로는 목재·고무·코프라·마닐라삼이 손꼽힌다. 깊숙이 굽은 만(灣)이 여러 개 있어 빅토리아·코타키나발루(주도)·쿠다트·산다칸·타와우 등 훌륭한 항구가 갖추어져 있다. 돌·산호모래·점토를 추출해서 건축재료로 사용한다. 틸라와스 강 가까이에서는 금광이 발견되었으며 앞바다에서는 석유 시추작업을 한 결과 템붕고 유전이 개발되었다. 공업으로는 제재업과 고무제품 제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말레이인·카다잔족·중국인·바자우족·무루트족이 주요인종집단이다. 보르네오 섬에 속한 다른 지역과는 달리 사바에는 강이 1개(키나바탕간 강)밖에 없지만 이 강을 통해 내륙 깊숙한 곳까지 접근할 수 있다. 상호교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강뿐인 곳도 몇 군데 있지만 여행은 주로 4륜마차·조랑말·물소를 교통수단으로 하는 육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소규모 도로망이 형성되어 있으며 보통 주요항구 도시에는 공항이 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쿠타르까지 간선도로로 연결되며, 총 187㎞에 이르는 철도구간이 코타키나발루에서 테놈까지 가설되어 있다.
 
== 사회 ==
=== 언어 ===
{{빈 문단}}
=== 문화 ===
{{빈 문단}}
=== 독립 운동 ===
{{빈 문단}}
=== 비자 문제 ===
사바는 사라왁과 마찬가지로 본토와는 분리된 별도의 이민국이 존재하며, 말레이시아인이라도 사바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다. 이는 본토인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우려하여 입국 제한조치를 취하는 것인데, 가령 본토인이 사바에 들어올 때는 90일 무비자를 받게 된다. 취직 또는 입학의 경우 별도의 비자 신청이 필요하다. 다만 사라왁에 비하면 제한이 덜한 편이며, 본토에서 무비자를 받은 외국인이라도 사바에서 문제없이 체류할 수 있다. 사바에서 받은 비자로 본토에서 체류할 순 있으나, 사라왁은 안 된다.
 
이러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종의 지역감정은 한 가지 대표적인 이유로 거론되기도 한다. 실제로 사바인들의 상당수가 본토에 대한 반감이 있으며, 일부는 SSKM 등 독립단체를 결성하여 분리독립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 물론 사라왁에 비하면 본토에 더 동화되긴 했지만, 원주민들 사이의 지역감정은 여전하다.
 
사라왁 주와 마찬가지로 본토인을 블랙리스트에 넣어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 최근 술루 술탄 가족과 접촉해 논란이 된 야당 지도자 [[누룰 이자 안와르]]는 사바 주에서 입국이 금지되었다.
 
== 각주 ==
<references/>
 
== 바깥 고리 ==
* [http://www.sabah.gov.my 사바 주 홈페이지]
 
{{말레이시아}}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분류:말레이시아의 주]]
[[분류:사바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