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 사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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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염불왕생(念佛往生)의 원이라고도 하여 정토신앙 형성의 핵심이 되는 구절임. 중국에는 2세기경부터 정토 관계 경전이 번역되기 시작하여 5세기경에는 거의 모든 경전이 번역되었고, 선도(善導)는 『정토삼부경』을 중심으로 [[중국]] 정토교를 대성시키고 있다.
 
[[한국]]에서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원광]](圓光)이 처음으로 정토사상을 도입했다고 추정되고 있는데, 그 뒤 [[자장]](慈藏)・[[원효]](元曉)・[[의상]](義湘)・[[의적]](義寂)・[[태현]](太賢)・[[경흥]](憬興) 등을 통하여 활발한 교학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울러 정토신앙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민간에 널리 전파되었다.
 
당시 [[신라]]는 계속된 전쟁 속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릴 때 아미타불은 그 두려움을 없애줄 뿐만 아니라 죽은 자를 극락왕생시킨다는 믿음으로 민간에 널리 퍼져 나갔으며, 아울러 『[[삼국유사]]』에 전하는 많은 [[설화]]를 통해서도 당시에 유행했던 아미타신앙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이 불교에서는 낙원을 정토로 지칭하며 부처·보살이 가는 청정(淸淨)한 세상으로 곧 불교의 이상사회를 말한다. 이곳은 자연적 환경과 물질적 풍요를 누릴 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비와 지혜로 충만한 삶을 사는 사회라고 전해지고 있다. <ref>『삼국유사(三國遺事)』,『신라정토사상사(淨土思想史)연구』(안계현, 아세아문화사, 1979),『정토사상(淨土思想)』(홍윤식, 한겨레출판사, 1980),「신라백월산이성설화(新羅白月山二聖說話)의 연구」(김영태, 『불교사학논총』, 1965),「신라의 미타사상(彌陀思想)」(김영태, 『불교학보』 12, 1975) 참고</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