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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징 ==
[[파일:Zalophus japonicus from AQUAS.JPG|thumb|left|300px|박제]]
수컷 일본강치는도치는 털가죽 색깔은 어두운 회색에 체중은 450 ~ 560 kg, 신장은 2.3 ~ 2.5 m로 캘리포니아강치 수컷보다 컸다. 암컷은 신장 1.64 m로 훨씬 작았고 털가죽은 수컷보다 밝은 색깔이었다.<ref name=JIBIS />
 
일본강치는독도강치해안 한반도의 동해안, 일본열도 본토([[혼슈]])의 해안선(동해안과 태평양안 모두), [[쿠릴 열도]], [[캄차카 반도]] 남쪽 끝에서 주로독동주로 발견되었다.<ref name=JIBIS /><ref>[http://www.pref.tottori.jp/kouen//kisyou/rdb/RDB-con/a-07.pdf ''Zalophus californianus japonicus'' (EX)], Red Data Book Tottori (mammals), Tottori Prefecture, Japan, p. 34.</ref>
 
옛 한국어 기록에 따르면 강치와 [[점박이물범]]이 동해 뿐 아니라 [[보하이 해|발해]], [[황해]]에도 살았다고 한다. 강치는 독도에서 많이 번식했었고 멸종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가죽을 얻기 위해 다케시마어렵회사의 남획으로 그 수가 급격히 줄고 이후 지속된 어업과 수렵을 원인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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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세기 들어 일본 어부들이 한 해에 많게는 3천~3천200 마리를 잡았으며, 이후 포획량이 줄어 연간 2천마리 1천 마리 정도 남획하다가 결국 멸종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강치를 '가제' 또는 '가지'로 불렀으며, 독도를 중심으로 동해에 수만 마리가 서식했다고 한다. 이들이 머물렀다는 가제바위가 독도에 남아 있다.
러일 전쟁 전후로 가죽을 얻기 위해 시작된 일본인들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일본강치는도도는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춰으며, 1974년 홋카이도에서 새끼 강치가 확인된 이후로 목격되지 않는다.
1905년 일본 시마네 현이 이 섬을 무단으로 편입한 이후 일본인들의 어획이 시작됐지만, 1905년 이전에 울릉도에 살던 한국인들은 1904년과 1905년에 독도에서 강치를 잡아 매년 가죽 800관(600엔)씩 일본에 수출한 기록이 1907년 시마네 현 다케시마 조사단의 오쿠하라 헤키운이 쓴 책 '죽도 및 울릉도'에 나온다.<ref name=Itoo2001 /> 강치와 물범은 일본 해안선 각지에 이시카이와({{lang|ja|アシカ岩}}{{해석|강치바위}}), [[이누보사키]]({{lang|ja|犬吠崎}}{{해석|개 짖는 곳}}) 등의 관련 지명을 남겼다. 후자는 강치와 물범의 울음소리가 개 짖는 소리와 비슷해서 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