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동: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9번째 줄:
그의 [[본관]]은 [[함창 김씨|함창(咸昌)]]이고 [[호 (이름)|호(號)]]는 동파(東坡)이며 [[경상북도]] [[상주시|상주]] 출생이다.
 
1934년 음악평론가 첫 등단한등단을 한 그는 이듬해 1935년 피아니스트 데뷔에 이어 같은 해 1935년 음반 프로듀서 데뷔하는 등 잠시 피아니스트 겸 음반 프로듀서 활약하다가 1943년에는 영화평론가 데뷔하였으며등단하였으며 광복이 도래한지 1년이 지난 1946년 《모란등기(牡丹登記)》로 영화감독 데뷔하였다. 1956년 《왕자호동(王子好童)과 낙랑공주(樂浪公主)》, 1957년 《아리랑》, 1958년 《돈》, 《오! 내 고향》 등을 발표했다.<ref name="글로벌_1">예술·스포츠·취미/영화/영화의 감상/한국영화의 감독과 작품/김소동, 《글로벌 세계 대백과》</ref>
 
그의 [[영화|작품]] 가운데 [[사극]] 작품을 제외한 그의 작품 세계는 늘 [[농촌]]을 무대로 하고 있으며, 도회지의 모순된 상황이나 위선 따위를 풍자 내지 고발하고 있다. 특히 《돈》에서는 이러한 비판의식이비판 의식이 잘 부각되었으며, 제2회 영화평론가협회상을 받았다.<ref name="글로벌_1"/>
 
== 소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