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도로섬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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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도로 섬 전투'''(Battle of Mindoro)는 [[태평양 전쟁]] 중인 [[1944년]] [[12월 13일]]부터 2월 하순에 걸쳐 일본군과 미군 사이에 [[필리핀]] 북부 [[민도로 섬]]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미군의 작전 목표는 [[루손 전투]]를 대비하여 작전 거점을 확보하고, 필리핀 전역을 일본군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환으로 민도로 섬 자체를 탈환하는데 있었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미군의 공격으로 일본군 수비대는 전멸했다.
 
== 배경 ==
연합군 남서 태평양 방면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루손 섬]] 공략을 위한 중요한 기반으로 [[레이테 섬]]의 전투 비행장을 확보한 레이테 섬 보다 [[루손 섬]]에 더 가까운 필리핀 북부의 섬들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루손 섬 바로 남쪽에 위치한 민도로 섬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섬이라고 생각했다. 레이테 섬의 부족한 입지 조건 속에 건설된 비행장은 신뢰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루손 전술 항공 지원 기지로서 민도로 섬의 확보는 맥아더에게 시급한 일이었다. 민도로 섬은 산이 많고, 평원은 적었지만 비행장의 적지로 전쟁 전부터 비상착륙 활주로가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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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육군 제6군 사령관인 [[월터 크루거]] 중장의 지휘 하에 [[12월 15일]] 민도로 섬에 침공을 결정했다. 맥아더는 12월 5일의 침공을 요구했었지만, 크루거는 레이테 섬의 전황과 항공 지원 부족을 이유로 거절했다. 제24 보병사단(사단장 : [[로스코 B. 크루거]] 소장)의 제19보병 연대와 제503 공수 보병연대(연대장 : 조지 M. 존스 중령)의 2개 연대를 기한을 두고 1만명을 투입하기로 이들을 ‘The Warden(파수꾼이라는 뜻)’라고 명명하여 침공을 준비했다.
 
== 전투 ==
상륙 선단은 고속수송함(APD) 8척, 전차상륙함(LST) 30척, 중형상륙함(LSM) 12척 등 호위 순양함 내쉬빌(기함)과 구축함 8척으로 구성되어 중순양함 1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12척으로 구성된 직접 엄호 함대와 호위 항공모함 6척, 전함 3척, 중순양함 2척의 추가 지원 함대가 따라가고 있었다. 제19 보병연대 외에도 제503 공수 보병연대의 낙하산병들도 레이테 섬의 활주로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로로 망가린 만에 상륙하게 되었다. 기지 공병대 등을 포함하여 상륙 부대의 총 병력은 약 2만 7천명이었다. 점령 후 주둔시킬 어뢰정 23척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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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본군은 민도로 섬에 부대가 상륙할 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13일경에 네그로스 섬에, 14일 정도가 되어야 [[루손 섬]] 남부에 상륙 부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 오판의 결과 다호작전이 중지되게 된다.
 
=== 미군의 상륙 ===
[[12월 15일]] 미군에 의한 민도로 섬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날은 날씨가 맑았고, 해상 침공 부대는 날씨에 민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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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48시간 이내에 섬의 주요 지역의 확보를 마쳤다. 일본군은 압도적인 전력 차이로 인해 전투를 회피했다. 일본군 중 섬 북부의 방공 감시소에 있던 300여명은 제503 공수 보병 연대의 1개 중대에 의한 공격을 받고 전투를 벌였지만, 겨우 산을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군은 즉시 비행장의 정비를 시작하여 13일 동안 2곳의 비행장을 완성시켰다. 12월 26일경에는 항공기 120대가 준비되었다.
 
=== 일본군의 반격 ===
{{참고|레이호 작전}}
일본 해군은 민도로 섬의 이용을 방해하기 위해 중순양함 아시가라급, 경순양함 오요도, 구축함 6척의 함대를 망가린 만에 보냈고, 12월 26일에 비행장과 정박 중인 선단을 공격했다.([[레이호 작전]]). 수송선 1척을 침몰시키는 등의 전과를 거두었지만, 기지를 무력화시킬 정도의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일본 육군 항공대에 의한 공습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피해는 입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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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야 중위가 지휘하는 돌격대는 선박 공병 제24 연대의 다이하추급 보트를 타고 12월 28일에 루손 섬을 출발해 1945년 1월 5일에 민도로 섬 동부에 상륙했다. 근처의 미군과 교전을 벌인 후, 돌격대는 배를 타고 철수했다. 1월 18일에 돌격대는 민도로 섬 남부에 다시 도착하여 2월 23일에 산호세 비행장 근처까지 진출했지만, 그 전투로 괴멸당했다.
 
== 결과 ==
민도로 섬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연합군은 민도로 섬에 비행장 설치하여 루손 섬 주변의 제공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상륙 후 짧은 교전에 의해 일본군 수비대는 전사 200명, 부상 375명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소탕전과 기아, 질병 등으로 일본군은 더 손실을 입었고, 전쟁이 끝났을 때 투항자는 26명이었다. 이에 반해 미군 제24 보병 사단은 전사 18명, 부상 81명의 피해를 입었다. 또한, 상기의 26명 외에도 산 속에 버티던 일본군 생존자가 남아있어 1956년에 2명이 더 추가되었다.
 
== 참고자료 ==
* {{서적 인용| url = http://www.history.army.mil/brochures/luzon/72-28.htm | series = The U.S. Army Campaigns of World War II| title = Luzon| id = CMH Pub 72-28| publisher =[[미군역사센터]]| first = Dale | last = Andrade |year=1979}}
* {{서적 인용|title=Reports of General MacArthur: The Campaigns of MacArthur in the Pacific: Volume I|publisher=Department of the Army|location=Library of Congress|pages=242–294|url=http://www.history.army.mil/books/wwii/MacArthur%20Reports/MacArthur%20V1/ch09.htm|accessdate=2014-1-5|chapter=Chapter IX: The Mindoro and Luzon Operations}}
{{태평양 전쟁}}
{{기본정렬:민도로 섬 전투}}
 
[[분류:필리핀의 역사]]
[[분류:태평양 전쟁의 전투]]
[[분류: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의 전투]]
[[분류:1944년 필리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