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렝겔라 나바라 왕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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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라의 왕녀 베렝가리아의 유년시절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녀는 [[1191년]] [[5월 12일]]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와 결혼했고 후사는 태어나지 않았다. 후사가 없었던 이유로는 리처드 1세가 동성애자였다는 설과 베렝가리아가 불임이었다는 설이 있다.
베렝가리아는 결혼을 위해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함께 잉글랜드에 도착했으나, 리처드 1세가 즉위하자마자 즉시 [[제3차 십자군]] 원정에 나서는 바람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베렝가리아는 아직 약혼녀의 신분으로 시어머니
리처드 1세가 동성애자였다는 학설이 지지를 얻는 가운데, 많은 학자들이 베렝가리아와 리처드 1세 사이에 성관계는 없었을 것이라 주장한다. 리처드 1세가 베렝가리아가 아니라 베렝가리아의 오빠였던 산초 7세와 연인관계였다는 설도 있다.
리처드 1세는
전형적인 정략결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199년]] 리처드 1세가 서거하자 베렝가리아는 진정으로 비탄에 빠졌다. 왕위에 오른 [[잉글랜드의 존|존
베렝가리아는 자신의 영지 프랑스 [[르망]](Le Mans)에서 평탄한 여생을 보냈다. 그녀는 L'Epau 수녀원의 후원자가 되었고, 말년에는 그 수녀원에 들어가 [[1230년]] [[12월 23일]] 생을 마쳤다.
[[분류:영국의 왕비|베렝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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