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부흥운동: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Secesion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잔글편집 요약 없음
5번째 줄:
 
이들은 [[일본]]으로부터 왕자 [[부여풍]](豊)을 맞아다가 [[백제]]의 32대 왕으로 삼았으며, [[사비성]]·[[웅진성]] 등을 포위하여 주둔하는 당군의 식량이 궁핍한 위기에 이르는 일이 몇 차례에 걸쳤다. 이 부흥군과의 전투에서 당군이나 [[신라]]군은 패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이 부흥 운동도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풍이 또 [[복신]]을 죽이는 내분이 생겨 와해되었다. [[663년]] [[9월]] [[당나라]]의 원병을 얻은 연합군이 이 기회를 포착하여 부흥군의 본거지인 [[주류성]]을 함락하였으므로, 4년에 걸친 부흥 운동도 종막을 고하고 말았다. 또한 [[664년]]에는 [[지수신]]이 지키고 있던 [[임존성]]이 함락되었고 [[664년]] [[4월]]에 [[사비성]]에서 일어난 백제 부흥운동 역시 진압되었다.
 
== 소백제 ==
백제 멸망 후 부여풍을 임금으로 옹립하여 작은 백제, 즉 [[소백제]](小百濟)를 결성해서 당군과 맞서 싸우게 되었으며, 이후 [[부여융]]과 [[부여경]]이 당으로부터 웅진도독 대방군왕에 임명되어, 부여풍에 이어 소백제를 다스렸지만 신라의 신속한 백제고지 경략작전(經略作戰)에 따라 많은 백제의 옛 땅이 신라에게 잠식되어 감에 따라 통치의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677년(문무왕 17) 신라가 남은 영토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망했다.
 
== 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