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계대원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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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살이 ===
본부인은 전주인(全州人) 학생 증 [[의정부]]영의정(領議政) [[최수창]](崔秀昌)의 딸로 [[완양부대부인|완양부대부인 최씨]](完陽府大夫人 崔氏)이고, 첩으로 용담인(龍潭人) 학생 증 [[의정부]]영의정(領議政) 염성화(廉成化)의 딸로 [[용성부대부인]] 염씨(龍城府大夫人 廉氏)가 있었다. 또한 첩실인 이씨(李氏)가 있었다.
 
한편, 이복 백형(伯兄) [[상계군]] [[이담]](常溪君 李湛)은 [[1786년]]에 [[홍국영]] 등의 추대를 받았다는 이유로 음독사했으며, 적모 [[상산군부인]] 송씨(宋氏)와 형수 신씨(申氏: 상계군 담의 처)는 [[1801년]](순조 1)에 [[천주교]]신자인 것이 당국에 적발되어 사사되면서, 아버지 은언군도 사사되었다. 이와같이 그는 부모와 적형·적형수의 죄로 연좌되어 [[강화부]] [[교동도|교동]]으로 쫓겨나 불우한 일생을 빈농으로 생활하였다. 이후 그는 강화도 내 위리안치된 집과 움막 등에 거주하며 남의 집 머슴살이에서 일일 잡역부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나갔다.
 
[[1812년]](순조 12) [[8월]] [[사옹원]][[봉사]] 박종일(朴鍾一)과 한광우(韓光友), 이진채(李振采) 등의 모역사건이 적발되자, 은언군의 아들들 중 한명을 추대하려 했다 하여 양사로부터 탄핵을 받았지만 [[조선 순조|순조]]가 사건을 무마시켜 [[풍계군|이당]], [[이성득]] 등 다른 이복형제들과 함께 사형 위기를 모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