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조 천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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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네이 천황]](清寧天皇) 재위 2년 11월에 니야(新室)에서 벌어진 연회 자리에서 노래로서 스스로 왕족임을 밝혔다. 아이가 없었던 세이네이 천황은 기뻐하며 칙사를 보내 이듬해 두 황자를 궁중에 맞아들이고, 4월 7일(5월 10일)에 형인 '''[[닌켄 천황|오케]]'''(億計)를 황태자로 삼았다. '''[[겐조 천황|오케]]'''(弘計) 자신은 황자가 되었다.
 
[[세이네이 천황]](清寧天皇))이 재위 5년 [[2월 27일]]에 사망하고, 황태자였던 '''[[닌켄 천황|오케]]'''(億計)는 신분을 밝힌 큰 공로를 이유로 남동생 '''오케'''(弘計)에게 왕위를 양보하려 했고, '''[[겐조 천황|오케]]'''(弘計)는 이를 사양하면서 한동안 공석이 된 왕위를 이이토요노키요 황녀(飯豊青皇女)가 집정하였다. 결과적으로 형의 설득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겐조 천황|오케]]'''(弘計)가 '''겐조 천황'''(顕宗天皇, [[일본]]의 제23대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황태자는 '''[[닌켄 천황|오케]]'''(億計)가 계속해서 맡았는데, 천황의 형이 황태자였던 사례는 그 이후 찾아볼 수 없다.
 
죄없이 죽임을 당한 아버지를 조문하고, 또한 아버지를 죽인 유랴쿠에 대한 보복으로 그의 무덤을 파괴하려 했으나, 외지에서 오랜 생활을 한 탓에 민중을 아끼고 사랑하는 정치를 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