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 (가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손동준 (토론 | 기여)
생일 기재
태그: m 모바일 웹
손동준 (토론 | 기여)
→‎생애: 세부사항 서술
태그: m 모바일 웹
4번째 줄:
[[1927년]] [[평안북도]] [[창성]] 출생으로, 어릴 적 [[수풍댐]] 건설로 고향이 물에 잠기자 [[중국]] [[창춘]]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해방 후 귀국하였으며, 관서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심사위원의 권유로 월남하였다. 이어 KPK 악단에서 가수생활을 했고, [[한국전쟁]]를 전후해 녹음기사로 전업하였다. 그러다가 [[1954년]] 작곡가 [[박시춘]]에게 <나는 울었네>, <숨쉬는 거리> 두 곡을 받아 취입, 크게 히트시켰다.
 
이후 그는 신세기레코드를 거쳐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발표하였고, 계속 <울어라 키타줄 > <사랑찾아 칠백리>,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등을 히트시켰다. [[1957년]] 말에 도미도레코드로 이전, <한많은 대동강>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이별의 부산항>, <청춘등대>, <향수의 블루스>, <동백 내리는꽃일기> <남원땅에 호남선잠들었네>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었고, 빅토리레코드에서 <해운대 엘레지>를 발표하여 크게 히트시켰다.1960년대 중반까지도 <돌아가자 남해 고향>, <한 많은 명사십리> 등을 취입하여 히트시켰다.
 
가수정식데뷰전 영화녹음기사시절 나화랑선생의
<함경도 사나이>가 최초의 취입곡으로 뒤늦게 알려짐
 
1977년 까지 종로구 명륜 1가에서 20년 살다
역삼동 선릉부근에서 39년 살다 별세
 
1980년대 중반까지 영화녹음작업을 했으며, 원로가수거목회, 만나리, 뿌리회 등 가수친목회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