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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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리스의 발전 ==
최초의 ‘원시 왕정(原始王政)’은 실증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후대의 유제(遺制)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대개의 폴리스는 [[역사시대]](문헌 존재의 시대)에 이미 이 단계를 거쳐 귀족정기(期)에 들어가 있었다(전 8세기). 그리스사의 사실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전대(前代)의 왕가(王家) 일족이 그대로 귀족으로서 존속하여 벌족(閥族) 지배를 했던 코린트의 박코스(Bacchiadai)가(家) 원로회나 감독관의 억제하에 비로소 왕정――더욱 서로 견제하는 2왕제――이 잔존할 수 있었던 스파르타 등과 같은 예외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원래 오리엔트의 초월적인 전제왕권에 비하여 상대적――예를 들면 토지 소유 등――또한 취약한 기반밖에 없었던 그리스인의 여러 집단의 왕권은 일반적인 안정기로 들어가 기능(제사적, 군사적)이 쇠퇴함과 동시에, 귀족층의 일부에 해소되어서 그 칭호(바실레우스)는 대개 단순한 관직명으로서 남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아테네, 아르고스 기타 등 다수).
 
귀족정은 철제 농구의 도입에 따른 농업 생산력의 증대와 잉여 생산물에 대한 해외교역의 발생에 의하여 공동체 내에 빈부 차가 생겨 공동체 성원이 귀족·농민의 두 층으로 분열되어, 전자가 정권(지배)을 독점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렇게 하여 두 층은 신분적 차이라는 질적(質的)인 전환을 하게 되어, 부(富)에의 기회가 별로 없었던 농민들은 이 밖에도 피해가 겹쳐 급속히 빈궁으로 전락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