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스와프 마체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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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참전 전투/전쟁=[[제1차 세계 대전]]
* [[이탈리아 전역 (제1차 세계 대전)|이탈리아 전역]]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br />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 [[코마로프 전투 (1920년)|코마로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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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샹부아 전투]]
* [[영국 해협 해안 정리]]
|수훈 내역= [[비르투티 밀리타리]] <br/ />
[[바로르 십자장]] <br/ />
[[레지옹 도뇌르 훈장]] <br/ />
[[전쟁 십자장 (프랑스)|프랑스 전쟁 십자장]] <br/ />
[[전쟁 십자장 (벨기에)|벨기에 전쟁 십자장]] <br/ />
[[바스 훈장]] <br/ />
}}
'''스테니스와프 마체크'''(1892년 3월 31일 &ndash;1994년 12월 11일)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의 [[오버로드 작전]] 기간 중 폴란드의 기갑 사단을 이끈 폴란드 전차장이다. [[제1차 세계 대전]],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등 폴란드 근현대의 전쟁에서 활약한 베테랑이었다. 1939년 [[폴란드 침공]] 당시 그는 유일하게 폴란드에서 기갑군을 보유하고 있었던 사령관으로, 요르다누프 전투에서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498대의 적 전차 중 50대를 격파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는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제1기갑사단 (폴란드)|폴란드 제1기갑사단]]과 서부 제1군단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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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장교 훈련을 받은 후, 마체크는 [[이탈리아 전역 (제2차 세계 대전)|이탈리아 전선]]에 참여하게 되었다. 초기에 [[티롤 주]]의 [[부사관]]으로 있던 그는 1916년 [[소위]]로 진급했고, 1918년에는 [[대위]]로 진급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산악여단 중 유일한 폴란드 여단 사령관으로써, 마체크는 산악전에서 경험을 쌓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후일 경력에 도움이 되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 소식을 듣고 그의 여단을 해산시키고 새로 탄생한 폴란드로 귀국했다. 3일 후 그는 [[크로스노]]에 도착하여 [[폴란드군]]에 합류한다. 크로스노 여단의 사령관으로 배정받은 마체크는 [[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병력에 대항해 제한적인 공세를 감행해 그의 고향에 대한 포위를 완화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불충분한 지원으로, 초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폴란드군의 공세는 효력을 잃었고,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은 [[참호전]]으로 그 양상이 뒤바뀌었다.
 
1919년 4월, 마체크는 그의 부대를 철수시키고 '날아다니는' 부대(''{{lang|pl|lotna kompania}}'')의 창설자 겸 사령관이 되었다. 이것은 제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스텀바타리오네''를 본딴 것으로, 마체크의 계획에 따라 창설된 것이며 대부분의 부대가 기계화부대였고, 기관총으로 잘 무장되었다. 부대의 대부분은 크로스노 여단의 잘 훈련된 병력 대부분으로 형성되었고, 당시 부대의 전투 가치는 폴란드군의 평균 이상이었다. 이에 따라 이 부대는 방어선에 나타난 구멍을 제거하는 소방수 역할로 복무했을뿐만 아니라 폴란드 봄 공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 부대는 전쟁에서 드로호비치, 스타니스와프, 그리고 서우크라이나의 수도 스트리와 같은 치열한 전장에 참여했다.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마체크는 1919년 6월 1일 중장 계급을 승인했다. 이후 그는 폴란드 제2군의 부관으로 지냈다. 부관 직의 지루함으로 인해 마체크는 그의 상관들에게 그에게 전선 부대의 사령관 직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소원은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야 충족될 수 있었다. 이 시기는 제2군이 [[세묜 부됸니]]의 제1기병군과의 초기 충돌에서 큰 패배를 입었을 때였다. 야로스와프에서 마체크는 새로운 '날아다니는' 소총대대를 창설했고, 새로운 군인들과 집없는 울란들이 이 대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불충분한 훈련에도 불구하고 부대는 전선으로 이동했고, 마체크는 다시 한 번 "소방수"로서 활동했다. 그는 그의 부대가 필요한 곳으로 재빠르게 부대를 보냈다. 모스티 비엘키에에서 후퇴한 폴란드군의 병력을 그의 부대가 메꿨다. 그 부대는 자모츠크 근처의 바제츠에서 공격을 펼쳤고 세묜 부됸니의 진격하는 코자크 부대의 위협에 대해 전략적인 반격을 가해 코마로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전쟁 후, 마체크의 여단은 그의 이름을 땄지만 [[리가 조약]]의 서명 후 곧 부대는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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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대십자 폴란드 재건국 훈장 수훈자]]
[[분류:폴란드의 망명자]]
[[분류:크로아티아계 폴란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