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혜황귀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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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간의 겹사돈과 [[청나라|청]] 황실의 배경 ===
{{정리 필요 문단|날짜=2016-03-30}}
그녀의 언니는 고종사촌 오빠 [[강희제]]의 [[후궁]]인 [[효의인황후|효의인황태후]]이고 그녀의 고모는 강희제의 아버지 [[순치제]](順治帝)의 [[후궁]]인 [[효강장황후|효강장황태후]]이며 그녀의 남동생은 [[청나라]]의 중신(重臣)이라는 지위로 [[정치가]]를 지낸 [[퉁기야 롱코도|동가 융과다]]이다. 그녀의 고모부이자 시아버지이기도 한 [[순치제]]는 [[1643년]] [[9월 21일]] 시할아버지 [[숭덕제|청 태종 숭덕제]](淸 太宗 崇德帝)가 51세로 붕어하자 5세의 나이로 보위에 올라 1643년부터 [[1646년]]까지는 [[지르갈랑]]의 [[섭정]]을, 1646년부터 이듬해 [[1647년]]까지는 시할머니 [[효장문황후|효장문황태후]]([[숭덕제|태종 숭덕제]]의 [[후궁]]이자 순치제의 모후)의 섭정을, 1647년부터 [[1650년]]까지는 [[도르곤]]의 섭정을 받은 후 [[1650년]]부터 1661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이후 재위 만년인 [[1661년]] [[1월 7일]]에 행치(行痴)라는 [[법명]]으로 [[불교]] [[승려]]가 되었다가 1개월 후인 1661년 [[2월 5일]]에 [[천연두]]로 인하여 23세로 붕어하였다. 또 그녀의 훗날 [[남편|부군(夫君)]]이 되기도 하는 고종사촌 오빠 강희제가 7세의 나이로 보위에 등극하여 1661년부터 이듬해 [[1662년]]까지는 [[허서리 소닌|색니]]의 [[섭정]]을, 1662년부터 이듬해 [[1663년]]까지는 [[나라 숙사하|소극살합]]의 섭정을, 1663년부터 [[1665년]]까지는 [[니오후루 어빌룬|알필륭]]의 섭정을, 1665년부터 [[1667년]]까지는 [[구왈기야 오보이|오배]]의 섭정을 받은 후 [[1667년]]부터 1722년 [[12월 20일]]을 기하여 68세로 붕어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