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112.171.58.180(토론)의 17547044판 편집을 되돌림
3번째 줄:
[[파일:Louis XIV of France.jpg|300px|thumb|right|[[프랑스]]의 [[루이 14세]]. 많은 사람들이 절대주의의 상징으로 본다.<ref>{{웹 인용 |url= http://www2.sunysuffolk.edu/westn/absolutism.html|제목= French Absolutism (프랑스 절대군주제)|확인일자=2010-03-29 |형식= |웹사이트= SUNY Suffolk history department}}</ref>]]
{{군주주의}}
'''절대주의'''(絶對主義, Absolutism)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를 특색지워 주는 독재정치 형태다형태이다.
==개요 ==
 
20번째 줄:
[[프랑스]]의 절대주의는 [[백년전쟁]] 말기 [[샤를 7세]] 시대에서 시작되어 [[앙리 4세]] 시대에 그 기초가 확립되었다.
 
절대주의가 최성기(最盛期)를 이룬 것은 17세기 후반의 [[루이 14세]] 시대였다. 프랑스에 있어서는 영국과 달리 봉건적 세력의 해체는 극히 불분명하고 농노 해방은 철저하지 못하여 독립 자영농민의 광범한 형성은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 농민의 대부분은 현물지대(現物地代)와 각종 의무 부담이 부과된 절반 소작(折半小作)이었으며, 자본의 축적도 불충분하여 자유로운 공업의 전개는 늦어지고, 도매 상인에게 지배된 길드적 수공업이 강하게 뿌리박고 있었다. 중상주의 정책에 의한 국내 산업의 육성도 결국 왕립(王立)·국립(國立) 혹은 특권적 매뉴팩처를 조성하는 데 그쳤다. 프랑스에서의 귀족의 세력은 뿌리가 깊어, 고등법원을 중심으로 왕권에 도전하려 했으며, 특권의 회복을 기도하여 반란을 일으킨 일도 있었다.
 
앙리 4세 이래 이러한 귀족의 세력을 누르고 왕권의 강화와 국내 통일을 이루려는 시책이 역대 여러 왕에 의하여 실행되어 루이 14세 친정 시대(親政時代)의 왕권은 비할 데 없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루이 14세에 의한 대외 전쟁은 재정의 궁핍을 초래하였고, [[위그노]]의 추방은 프랑스의 경제적 발전을 극히 저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