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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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22세) 대학 졸업 후 [[뉴욕]]으로 옮겨 '보그'(''VOGUE'')나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등의 잡지 광고와 일러스트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2년]]에는 신문광고 미술 부문에서 "아트 디렉터스 클럽 어워드"(''Art Director's Club Award'')를 수상하고, 상업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했지만 동시에 주문주의 요구에 부응하여 그림을 수정 하느라, 사생활에서는 대인 관계에서 타격을 받은 고난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나중에 단지 정확하게 비추는 TV 영상처럼 내면을 버리고 표층을 철저히 충실하게 추구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곧 선에 잉크를 실어 종이에 전사하는 "브로테드 라인"(Burottedo line)이라는 대량 인쇄에 적합한 기술을 발명한다.
 
[[1960년]] (32세), 그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를 버리고 미술의 세계로 옮겨간다. '[[배트맨]]’, '[[딕 트레이시|딕 트래이시]]’, '[[슈퍼맨]]’ 등 만화를 모티브로 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하지만, 계약했던 〈레오 캐스테리 갤러리〉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 만화를 모티브로 한 시대를 풍미한 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을 접한 이후 이 주제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당시 미국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추구하고 있었다.
 
[[1960년대]]부터 그는 〈캠벨 수프 캔〉이나 〈[[코카콜라]] 병〉 등 유명한 상품들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후에 그는 실크스크린으로 바꾸어, 대량생산된 상품의 그림을 그리는 것만 아니라 작품 자체를 대량생산하였다. 그는 "예술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뉴욕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인 《[[팩토리 (스튜디오)|팩토리]]》(The Factory)에서 판화, 신발, 영화, 책 등을 만들어내었다. 워홀의 작품에는 의뢰를 받아 제작한 초상화나 광고도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