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순천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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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전라남도]] 동부 일대
|결과 = 반란 진압
|교전국1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제1공화국]]<br/>
*{{국기나라 그림|군대1Flag of the Republic of Korea =Army.svg}} [[남조선국방경비대|국방경비대]]<br />경찰
|군대2 = 14연대
*{{국기그림|대한민국}} [[여수경찰서|여수]]·[[순천경찰서|순천]] 경찰
|군대3 = ­
|교전국2 = {{국기그림|대한민국}}14연대
|지휘관1 =
|지휘관2 = [[김지회]][[작전 중 사망|†]]<br />[[지창수 (군인)|지창수]][[작전 중 사망|†]]
|지휘관3 = ­
|병력1 =
|병력2 = 2,000여명
|병력3 = ­
|사상자1 =군인 180여명<br />경찰 74여명
|사상자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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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지도설명 =
|기타 =
 
}}
'''[[여수시|여수]]·[[순천시 (전라남도)|순천]] 사건'''(麗水順天事件, 약칭 '여순 사건', [[1948년]] [[10월 19일]])은 중위 [[김지회]], 상사 [[지창수]] 등의 [[남로당]] 계열 장교들과 2,000여 명이 친일파 인사들이 주류가 된 남한의 단독적인 정부수립에 대한 불만과 군과 경찰 간의 갈등, [[제주 4·3 사건]]진압 명령에 항명해 [[전라남도]] [[여수시|여수]]에서 반란을 일으킴으로 인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전라남도]] 동부 지역의 많은 민간인이 희생 당한 사건이다. [[대한민국 제1공화국|이승만 정부]] 수립 2개월만에 겪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은 철권 통치와 반공주의 노선을 강화함과 동시에 숙군 작업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남로당의 프락치였던 [[박정희]]는 무기형을 선고 받게 되지만 남로당원들의 명단을 순순히 넘겨주고, 숙군 책임자 [[김창룡]]과 만주군 선배인 [[백선엽]], 정일권 등의 구명요구로 풀려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