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램 스토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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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m 모바일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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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스토커는 1 마리노 크레센트의 제임스 발콤브 중령의 딸, [[플로렌스 발콤브]]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유명한 미인으로, [[오스카 와일드]]가 청혼을 하기도 했다.<ref>Irish Times, 8 March 1882, page 5</ref> 와일드는 스토커가 대학교의 철학 협회 회장으로 있을 때 그에게 회원 신청을 한 인연이 있었다. 플로렌스의 거절에 와일드는 화가 났지만, 이후 스토커가 다시 그녀와 교제하였고, 이것이 와일드가 미국으로 떠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ref name = "irtimes">{{웹 인용|url=http://www.irishtimes.com/newspaper/weekend/2009/0328/1224243595688.html|author= |title=Why Dracula never loses his bite|date=last modified 2009|publisher=Irish Times|accessdate=4 January 2009}}</ref>
 
스토커는 런던으로 이주하여 어빙의배우 [[헨리 어빙]]의 비서이자, 어빙의 [[라이시엄 극장]]의 사무 책임자로 일하였고, 27년 동안 업무를 지속하였다. 1879년 12월 31일, 브램과 플로렌스는 외동 아들 어빙 노엘 손리 스토커를 낳았다. 헨리 어빙과의 협업은 스토커에게 중요한 계기로, 이를 통해 그는 런던의 [[상류 계층|상류 사회]]에 진출하게 되어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아서 코난 도일|아서 코난 도일 경]] (스토커와 먼 친척)을 알게 되었다. 스토커는 당대의 가장 유명한 배우였던 어빙을 위해 일하였고, 런던에서 가장 성공한 극장을 경영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그만큼 유명해졌다. 어빙에게 헌신한 스토커는 회고록에서도회고록에서 그를 숭배한다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스토커는 런던에서 [[홀 케인]]을 만나기도 했는데, 가까운 친구 중 하나가 되어 그에게 소설 《드라큘라》를 헌정하기도 했다.
 
스토커는 어빙의 관광 여행에 함께 하면서 스토커는 여러 나라를 다녔는데, 정작 자신의 가장 유명한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동부 유럽]]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스토커는 어빙이 유명했던 [[미국]]에 가는 것을 즐겼는데, 어빙과 함께 [[백악관]]에 두 번 초대 받았고, [[윌리엄 맥킨리]]와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만났다. 스토커는 두 편의 소설에서 미국인을 등장인물로 설정하였는데, 퀸시 모리스가 유명하다. 문학적 우상인 [[월트 휘트먼]]을 만나기도 했다.
 
== 집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