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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정계에 입문하기까지 ===
그는 본디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를 졸업하고다니던중 귀국하여 [[삼성물산]]에서 부장을과장을 지낸 샐러리맨이었다. 그러나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이 국회를 해산시키고 제1야당 [[신민당 (1967년)|신민당]]의 중진이었던 그의 형 [[조윤형]]을 정치활동규제자로 묶었다. 신군부에 의해 금배지를 억울하게 뺏긴 조윤형은 동생인 그에게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했고, 그는 [[서울]] [[성북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서울지역 무소속으로는 유일하게 1위로 당선된다.
 
이 후 [[황명수 (1927년)|황명수]], [[권노갑]] 등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와 [[신한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대한민국 제12대 총선|12대 총선]]에서는 형 조윤형이 정치활동규제자에서 제외된 뒤 성북구에 출마하면서 [[도봉구]]로 옮겨서 출마했으나 신한민주당 선풍에 편승해 여유있게 1위로 당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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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메이커에서 탄핵사태 주역으로 ===
[[1997년]]의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이 당선되면서 그는 정치입문 16년 만에 여당이 되었고, 이 후 [[국회의장]] 및 [[법무부]] 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리나 국회 [[법사위원회]]교육위원회 위원장에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2002년]]의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지방선거]] 참패 및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수도권 지역 국회의원들이 대거 [[한나라당]]으로 옮기자 이를 잘 막아내면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다.
 
하지만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친노세력들을 비판하며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해 그 해 11월에는 당 대표에 선출되었다. [[2004년]] 3월에는 [[자유민주연합]], 한나라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국회에 상정해 통과시켰지만 그 역풍으로 [[대한민국 17대 총선|17대 총선]]에서는 낙선한다. 그러나 호남을 텃밭으로 하는 [[새천년 민주당]] 소속으로서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자진하여 [[한나라당]]의 텃밭 중의 텃밭인 대구에 출마한 것은 높이 평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