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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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찬 방침 ==
당시 《일본서기》 편찬은 국가적인 대사업으로, 천황가(天皇家)나 씨족(氏族)의 역사상에서의 위치 설정을 하기 위한 것이어서 지극히 정치적인 색채가 짙었다. 편집 방침의 결정이나 원사료의 선택은, 정치적으로 우위자가 주도한 것으로 추측된다.
 
=== 문체 · 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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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는 순한문체로 여겨져 왔지만, 교토산업대학 교수 모리 히로미치(森博達)의 연구에서는 《일본서기》의 어휘나 어법에서 일본어적 발상에 근거한 오용이나 기용, 소위 '왜습(倭習)'이 많이 확인되며, 나아가 《일본서기》에 실린 [[만요가나]]의 음운의 차이 등의 연구를 토대로 α군(각권14~21, 각권 24~27)과 β군(각권13, 각권22~23, 각권28~29)로 분류하였는데, 왜습이 없는 정식 한문이 가득한 α군을 중국인(당에서 도래하여 일본에서 다이가쿠의 음박사가 된 속수언續守言과 살홍각薩弘恪)이, 왜습으로 가득한 한문이 쓰인 β군을 일본인(특히 신라에 유학했던 유학승 야마다노후비토 고우보山田史御方)이 쓴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α군에도 일부 '왜습'이 보이긴 하지만 이것은 원자료에서 직접 문장을 인용했거나 혹은 나중에 일본인에 의한 추가 · 수정이 이루어진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각권24, 각권25는 α군으로 분류되는 것에도 불구하고 을미의 변 · 다이카 개신에 관한 부분에서 '왜습'이 빈번히 출몰하고 있는데, 소가씨를 역신으로서 주멸한 쿠데타였던 '을미의 변'에 관한 기록이 [[겐메이 천황]](덴지 천황의 아들)이나 [[후지와라노 후히토]](후지와라노 가마타리의 아들)의 의향으로 대폭 가필된 것이 아니냐고 보기도 한다.
 
백제로부터의 불교 전래에 대해서 《일본서기》는 긴메이 13년([[552년]]) 10월에 백제의 성명왕(聖明王)이 석가불상과 경론을 바쳤다고 했으나, 《상궁성덕법왕제설(上宮聖德法王帝說)》이나 《겐코지연기(元興寺緣起)》는 긴메이 천황 무오년 10월 12일(다만 긴메이 천황의 치세에는 무오년이 없으므로 실제로는 긴메이 천황이 아닌 [[센카 천황]] 3년, 서기 [[538년]]으로 추정되고 있다)에 불교가 백제로부터 전해졌다는 설을 전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이것이 통설로 되어 있다.
 
이같이 《일본서기》에는 개변된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상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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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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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나라 시대의 역사 책]]
[[분류:일본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