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 스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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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1967 ===
롤링 스톤스는 1962년,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존스]]를 주축으로 보컬 [[믹 재거]],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 베이스 [[빌 와이먼]], 드럼 [[찰리 와츠]] 등 5명이 모여 결성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isa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5356|제목=롤링스톤즈, "트럼프에 우리 노래 쓰게 허락한 적 없어"|성=강민욱|이름=|날짜=2016-5-5|뉴스=시사포커스|출판사=|확인날짜=}}</ref> 1962년 7월 12일, 영국의 라이브 클럽 마키에서 〈Kansas City〉, 〈Bad Boy〉 등 18곡을 선보이며 첫 공연을 가졌다.<ref>{{뉴스 인용|url=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434639&year=2012|제목=롤링스톤즈 50년 전 첫 공연장 방문 ‘인증샷‘|성=이현우|이름=|날짜=|뉴스=스타투데이|출판사=|확인날짜=}}</ref> 재거는 당시의 공연에 대해, "청중은 밤을 새며 놀고 있는 대학생들이었다"며 "그들은 특별히 감정을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진가를 알아봤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695107|제목=`50년 장수' 롤링스톤즈‥"비결은 교감"|성=|이름=|날짜=2012-07-13|뉴스=연합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데뷔 당시 [[비틀즈]] 흉내를 내다가 참패를 맛본 그들은 매니저 [[앤드류 루그 올덤]]의 권고에 따라 곧바로 정반대 이미지로 차별화하여 재도전을 단행했다. 이때부터 그들의 트레이드마크는 불량, 퇴폐, 반항, 비행, 섹스 그리고 말썽과 같은 [[하위문화]]가 되었다.<ref name=":2" />
 
[[File:Stones ad 1965-2.jpg|thumb|upright|1965년 롤링 스톤스 북미 투어 광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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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rian_Jones_1965.jpg|섬네일|200px|왼쪽|1965년의 브라이언 존스]]
 
1966년에1966년, 발표한 《Aftermath》는 믹과 키스의 곡으로만 채워진 앨범으로 그들이 1960년대에 발표한 것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브라이언 존스가 [[시타르]]를 연주한 〈Paint It, Black〉은 큰 인기를 끌었고, 악동 이미지를 굳힌 〈Under My Thumb〉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ref name=":0">{{웹 인용|url=http://www.melon.com/artist/detail.htm?artistId=100337|제목=The Rolling Stones|성=|이름=|날짜=|웹사이트=멜론|출판사=|확인날짜=}}</ref>
 
=== 1968–1972 ===
1967년, 재거와 리처즈가 마약 불법 소지 사건으로 무거운 형량을 선고 받고, 이어 브라이언 존스도 런던 아파트에서 같은 혐의로 체포되었다. 《타임스》는 이에 대해 "누가 바퀴로 나비를 찢어 죽이나?"라는 비호 기사를 개재했다.<ref name=":2" />
 
1968년에1968년, 《Beggars Banquet》를 발표했다. 밴드가 발표한 최고의 곡 중 하나인 〈Sympathy For The Devil〉, 반항적인 이미지에 어울리는 〈Street Fighting Man〉을 수록한 앨범은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69년, 브라이언 존스의 탈퇴로 밴드는 큰 위기를 맞았다. 그는 거의 모든 악기를 다룰 수 있을 만큼의 천재적인 능력 가진 사람이었으나, 술과 약물에 찌든 일상을 반복해 보냈고 이기적인 성향 탓에 멤버들과 불화가 잦았다. 결국 밴드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1960년대 후반에는 탈퇴나 다름없는 존재였고 공식적으로 밴드를 떠난 지 한 달이 지난 1969년 7월 3일, 27세의 나이로 자택 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된다. 이에 밴드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하이드 파크]]에서 무료 콘서트를 개최했다.<ref name=":0" /> 브라이언 존스의 후임으로 [[믹 테일러]]를 영입했다.<ref name=":1">{{뉴스 인용|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2505&yy=2012|제목=[뮤직토크] 롤링스톤즈(하)|성=권오성|이름=|날짜=2012-11-22|뉴스=매일신문|출판사=|확인날짜=}}</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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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 발표한 《Some Girls》는 디스코 영향권에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낸 걸작으로 〈Miss You〉, 〈Beast Of Burden〉이 히트했다. 미국에서만 600만 장 이상 판매된 앨범은 영국에서도 골드를 기록하며 최고 히트작이 되었다. 1980년에 발표한 《Emotional Rescue》는 록앤롤 성향이 짙어진 앨범으로 영국, 미국 차트 1위에 올랐다.
 
1989년, 《Steel Wheels》 이후 5년의 공백을 가진 롤링 스톤스는 1994년에 《Voodoo Lounge》를 발표하며 투어도 재개했다. 앨범 발표 직후 원년 멤버 빌 와이먼이 밴드를 탈퇴한다는 소식과 더불어 이번 투어가 마지막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멤버들은 가벼운 농담으로 대꾸하는 여유를 보였다. 음반은 미국에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1997년에 발표한 《Bridges To Babylon》은 곡을 쓰고 앨범을 녹음하는 방식에 변화를 준 앨범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데뷔 40주년을 맞은 2002년에 새로운 베스트 앨범 《Forty Licks》를 발표했다. 〈Don't Stop〉, 〈Keys To Your Love〉 등 4개의 신곡을 수록한 앨범은 미국과 영국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무려 8년만에 발표한 정규 앨범 《A Bigger Bang》(2005)은 블루스 성향이 좀 더 강해진 록앤롤 앨범으로 〈Streets Of Love〉, 〈Rain Fall Down〉 등이 주목을 받았다. 'Bigger Bang Tour' 장면들이 담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샤인 어 라이트는 2008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앨범도 발매되었다.
 
2009년부터 과거 앨범들을음반을 재발매한발매하기 롤링 스톤스는시작했다. 2011년, 그 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라이브 음원들을 디지털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결성 50주년을 기념하는 베스트 앨범 《[[GRRR!]]》을 발표했다.<ref>{{웹 인용|url=http://music.naver.com/promotion/specialContent.nhn?articleId=3450|제목=롤링스톤스 결성 50주년 반세기 이야기|성=배순탁|이름=|날짜=|웹사이트=네이버 뮤직|출판사=유니버설뮤직|확인날짜=}}</ref>
 
== 구성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