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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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의 정변]] 이후 [[1010년]]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의 황제 [[요 성종|성종]](야율융서)은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다. 강조는 통주(지금의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30만의 군사로 거란군에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고 사로 잡혔다.
 
장수그는 부장(副將) [[이현운]](李玄雲)과 함께 포로가 되어 잡혔다. 거란의 황제 [[요 성종|성종]]은 자신의 신하가 되라고 권유했으나, [[이현운]]만 응하고 강조는 응하지 않았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이현운은 이미 새로운 일월을 보았는데 한 마음이 어찌 옛 산천을 생각하겠느냐(兩眼已膽日月 一心何憶舊山川) 하였고, 강조는 이현운에게 배신하고 두 임금을 섬기느냐며 질책했다 한다. 강조는 끝까지 권유를 거절하다가 처형되었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