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국민항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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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전북 고창의 갑부 신용욱신용욱은 1922년 일본 오쿠리비행학교를 졸업하고 조종사면허를 받았다.그는 일본의 동아항공전문학교를 거쳐 미국 실라헬리콥터학교 조종과를 졸업, 미국 헬리콥터 조종사면허도 받았다. 1930년 미국서 귀국한 신용욱은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비행학교'를 설립하고 일본 육군과 해군에 입대할 조종사를 양성해서 일본군에 입대를 시켰다. 이 때 20여명의 조선인이 조종사로 선발되면서 일본의 비행학교와 일본군에 입대를 한다.조선비행학교 교장 신용욱은 1936년 10월 회사의 이름을 '조선항공사업사'로 바꾸고 항공운송사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그는 먼저 서울-이리 간의 정기항공노선을 개설하고 3인승 복엽기 (가스덴KR-2)를 도입해 1대로 주 2회 운항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광주 시민들의 노선 증편 요청에 힘입어 서울-이리-광주 노선 이 개설 되면서 국내 최초의 지역민항 사업자가 탄생을 하게 되었다.
 
일본항공운송(주)보다는 비록 보잘 것 없는 3인승 복엽기를 활용한 항공운송사업 이었지만 한국인 최초로 세운 항공사라는 점에서는 당시의 우리 국민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등 의미가 크다.신용욱의 항공사가 돈을 벌자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는 조선항공사업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일본정부는 일본 해군에서 DC-3 수송기(쌍발기,29인 승.1935년 미국제작.)를 인수하도록 주선하고 또한, 일본 육군으로 부터는 복엽기 10대를 불하 받으면서 신용욱의 사업은 점차 사세를 확장 하기 시작했다.